[헤럴드경제=황혜진 기자] 초저금리 시대, 은행의 전통적인 역할이 퇴색되고 있다.

본래 은행은 수신을 통해 자금을 받고, 이 자금을 기업 등 자금 수요가 있는 곳에 빌려줘 돈이 돌고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부실 우려로 대출을 줄이는 데 이어,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예대마진 축소로 수신 자금까지 꺼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은행들은 대출을 놓고 불꽃경쟁을 벌였다. 담보로 한 가계대출은 물론, 건당 규모가 큰 기업대출은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불황, 환율급변, 수출감소, 내수침체 등으로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기업대출부터 고삐를 쥐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1순위였다. 건당 대출규모가 커 1개 기업에서 부실이 나도 은행으로선 큰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의 위기는 중소기업 대출심사 강화로 이어졌다.

늘어난 좀비기업(한계기업, 영업 수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의 부실은 은행으로선 막대한 충당금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4ㆍ13 제 20대 총선이 끝난 직후 시작된 조선ㆍ해운발 기업 구조조정은 은행들의 ‘부실채권 포비아’를 증폭시켰다.

조선업에 물린 은행권 위험노출액(익스포저, RG포함)만 50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해운업(2조원)에 이외 취약업종으로 분류된 철강, 건설, 석유화학까지 포함하면 위험노출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수 밖에 없다.

실적보단 리스크관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요인 발생 시 해당 기업의 여신한도를 축소하고, 신규 여신을 억제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목표다.

이로 인해 기업에 대한 은행 문턱을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리스크관리를 위해 여신조기회수 및 한도 축소, 신규여신 억제 기조가 뚜렷하다.

NH농협은행의 대기업 여신 잔액은 올해 4월 말 기준 13조10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500억원 줄었다.

KEB하나은행도 25조9095억원에서 19조8075억원으로, 4조원 가까이 대기업 대출을 줄였다.

4월 말 국민은행의 대기업 여신은 17조2487억원으로 지난해 11월 보다 5857억원 감소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역시 같은 기간 각각 5857억원, 3000억원 가량 줄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점에 조금이라도 위험한 여신은 일찌감치 정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 “ ‘건전성이 곧 수익성’”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금리 장기화는 대출에 이어 수신 자금 기피현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수신자금인 예ㆍ적금 등 저축성 예금을 은행들이 꺼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은행을 사실상 먹여 살렸던 가계대출 부문이 올해는 여신심사강화 방안과 부동산 경기 위축 , 기업대출 억제 등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객 돈을 굴릴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들어오는 자금 또한 비교적 장기 운용이 어려운 1년 미만의‘뜨내기’ 자금이 많다.

금리인하는 수신자금 기피의 또다른 요인이 됐다.

은행 수익의 90%를 차지하는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이 금리인하로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줘야 하는 저축성 예금은 부담스러울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금리 장기화로 은행의 수익성은 매년 곤두박질 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국내 은행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1.55%로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2012년 2.10%였던 NIM은 2013년 이후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 말에는 1.58%까지 하락했다.

여기에 지난 9일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은행권의 이자이익은 올 하반기에만 1000억 원 넘게 감소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