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젊은 여성 브랜드의 옷, 고액 미용 목적 피부과 시술, 회사에 부과된 국세 700만원…
파산선고를 받고 채무 탕감을 신청한 오모(72)할머니의 카드명세서. 오 할머니는 그렇게 신용카드로 월 평균 500만원 정도를 긁어왔다. 이렇게 쓰여진 신용카드 빚만 45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70대 할머니의 소비라고 보기엔 누가 봐도 이상한 부분이었다.
오 할머니의 기록을 보던 법원은 할머니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돈을 쓰고 할머니에게 떠넘긴 것 아니냐 의심했다. 의심이 더해진건 오 할머니의 아들이 수입차를 타고 할머니의 면담 조사에 따라온 것을 법원측이 보고나서 부터다.
법원은 할머니에게 “카드를 실제로 쓴 사람이 누구냐”고 추궁했다. 처음엔 버티던 할머니는 끝내 “아들과 딸이 어려워서 대신 썼다”고 한숨을 쉬며 실토했다. 법원은 자녀들의 사용액을 도로 반환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들은 따르지 않았다.
결국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초 오 할머니의 채무 면책 신청을 불허했다고 15일 밝혔다. 결정이 확정되면 빚 4500만원을 다시 갚아야 한다. 할머니는 불복해 항고한 상태다.
오 할머니의 사례처럼 자녀가 쓴 빚을 대신 끌어안고 탕감을 위해 법원을 찾는 이른바 ‘불효파산’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게 당국의 추정이다. 연세가 많고 수입이 적은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면책 결정을 수월하게 받는 점을 악용한 신종 시도다.
할머니와 비슷한 시기 카드사에서 빌린 돈을 자녀에게 송금하고 파산 신청을 한 중년 여성(59)도 같은 이유로 면책이 불허됐다.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커피숍이나 아동복 브랜드에서 주기적으로 돈을 쓰고 파산을 신청한 경우도 있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의 소액 결제 기록이 빼곡한데도 자신의 빚이라 주장한 노인도 있다. 모두 부모를 대신 파산시키려는 자녀를 위해 기꺼이 불효파산에 이용당해주는 사례로 의심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잘못된 자식 사랑으로 보인다”고 했다.
올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이 파산을 선고한 1727명 중에선 65세 이상의 ‘노후파산’이 4명 중 1명 꼴인 428명에 달했다. 그 중 일부는 이런 불효파산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노인이 이례적 채무가 있을 경우 기록을 더 세밀히 검토하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