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흑인문화에 심취해 머리를 바짝 깎았던” 소년이 가요계를 놀라게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돼 ‘등장’했다. 스타성과 음악성을 두루 갖춘 신예를 갈구하던 가요계에 등장한 ‘알앤비(R&B) 신성’. 가수이면서 작사 작곡이 가능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자신의 색깔을 담아낼 줄 아는 근사한 ‘스토리텔러’다.

제이 지(Jay Z),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를 즐겨 들었다. “열여섯 살에 랩에 빠지면서 무작정 가사를 쓰기 시작했어요.” 랩과 알앤비가 같은 뿌리라는 걸 알게된 후 알앤비에 빠졌다고 한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어요. 독학으로 시작했는데, 만들면서 놀았던 거죠. 너무 재밌으니까 해야만 했어요.”

열아홉 살에 처음 작곡한 노래가 줌바스뮤직 신혁(엑소 ‘으르렁’, 저스틴 비버 ‘원 레스 론리 걸’ 작곡) 대표의 손까지 흘러들어갔다. 딘(DEANㆍ본명 권혁, 24)이 스무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줌바스뮤직 프로듀싱 팀에 작곡가로 계약을 하게 된 계기다. 이후 ‘딘플루엔자’라는 이름으로 엑소 빅스 이하이의 앨범에서 곡 작업을 했다. “딘의 감성을 퍼뜨리겠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에 ‘인플루엔자’를 붙였다.

데뷔도 미국이 먼저였고, 지난 3월 말 국내에서 발매한 첫 미니앨범 ‘130 무드:트러블(130 MOOD:TRBL)’도 빌보드가 먼저 주목했다. 빌보드 월드앨범 차트 3위, 히트시커스 앨범 차트 22위에 올랐다. 빌보드는 “딘이 데뷔 미니앨범으로 한국 알앤비를 차트로 이끌었다”고 전했다.

소년의 얼굴을 한 ‘신성’의 등장에 따라붙는 수사가 많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 외계에서 보내진 아이들”, 특히 음악과 미술 등의 예술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젊은 세대를 부르는 말이라는 ‘인디고 차일드’의 대명사가 됐다. 최근 서울 논현동 유니버설 뮤직 사옥에서 ‘인디고 차일드’ 딘을 만났다.

1992년생, 만 스물넷. 딘이 낸 첫 미니앨범 ‘130 무드:트러블’은 ‘상처받은 주인공’의 사랑과 이별을 적어내려간 스물네 살 전천후 아티스트의 첫 중편영화 격인 앨범이다.

“한 여자가 바에 앉아 있어요. 퇴폐적인 분위기도 풍겨요. 여자는 상처가 많아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곡을 작업할 땐 가사나 상황을 먼저 연출해요. 인물의 성격을 설정하고, 분위기를 정해요.”

디지털 음원 시대에 이제 막 첫 발을 디딘 싱어송라이터는 마치 영화감독처럼 잘 직조된 음반 한 장을 내놨다. 음악, 트랙의 구성, 속지, 재킷에 이르기까지 어린 뮤지션의 음악적 정체성과 방향성이 채워졌다.

“음원 위주의 단발성 싱글이 제작되는 시장에 대한 반항이라면 반항인데…제가 듣고 싶었던 앨범이에요. 하나의 색깔과 무드(분위기)가 있는 영화같은 앨범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겐 재미가 가장 중요한 요소거든요.”

한 남자가 여자에게 반하고(21), 사랑하고(아이 러브 잇), 다투다가 공백기를 갖고(D), 이별하고(왓투두), 이별 후를 살아가는(어때) 시간이 앨범에 담겼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 역행구성이다. 딘의 앨범은 아웃트로인 ‘어때’부터 시작해 첫 만남의 순간으로 끝이 난다. 빗나간 사랑의 씁쓸함이 극대화된다. “B급 무비의 암울함이 음악의 전반적인 무드”다. 직접 그린 그림들이 폴라로이드 형식의 속지로 들어가 ‘130 무드:트러블’의 한 곡 한 곡을 설명한다. “사건현장의 분위기를 연출”한 전략이다. ‘사랑’은 누구나의 인생에 있어 커다란 사건이기 때문이다. 앨범 재킷마저 보랏빛으로 통일감을 줬다. “음악을 들으며 이미지가 그려지는 시각화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던 아티스트의 시도다.

“일반적이지 않은 걸 하고 싶었어요. 제 경험이 녹아있기도 하지만, 스토리텔러로서 화자가 있고, 주인공이 있고, 영화처럼 써내려간 앨범이에요. 점수를 매길 순 없지만, 좋은 앨범이 됐다고 생각해요. 작업할 때 항상 아쉬움은 있어요. 그것 역시 미성숙함 자체로의 맛이 남은 것 같아요.”

딘은 “길들여지지 않는 눈빛, 반항적인 이미지”가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과 맞아 제임스 딘에게서 예명을 따왔다. 이번 앨범의 제목이 된 130은 “제임스 딘이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 차의 보닛에 적힌 숫자”다. ‘130 무드’는 앞으로 딘이 발매할 앨범의 시리즈물이 될 예정이다. “다음 앨범은 로코가 될 수도 있고 판타지가 될 수도 있어요. 항상 심오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음악이 될 거예요.” 이미 새 앨범에 대한 구상도 어느 정도 진행됐다. “시각화할 수 있는 앨범”을 그리기 위해 전문 성우들과의 작업을 추진 중이다. 하고 싶은게 많은 때다.

“지금의 앨범은 스물넷의 딘이 만든 것 자체였다면, 10년 뒤의 앨범은 서른넷의 딘, 그 자체일 거예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음이 기대되는 아티스트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이런 앨범이 나올 거라 예측했을 때 뒷통수를 치기도 하는,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저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음악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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