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불과 2달 전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본선에 가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싱겁게 참패를 당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하지만 불과 두 달만에 판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트럼프는 3일(현지시간) 인디애나 주 경선에서 50%가 넘는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이로써 흙탕물로 점철됐던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도 트럼프의 싱거운 압승으로 끝나게 됐다. 급기야 공화당은 이날 당 후보로 트럼프를 공식 선언했고, 트럼프의 마지막 대항마로 자처했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마저 이날 대선 레이스에서 중도 하차했다. 크루즈는 인디애나 경선 후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우리 나라의 낙관적 미래를 전망하며, 캠페인을 멈춘다”고 말했다.
게다가 트럼프가 본선에서도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이길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엽기적으로만 보였던 트럼프의 ‘막말 행보’가 대선 판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절대 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클린턴을 역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는 5가지 이유가 있다.
①믿을 수 없는 힐러리…그리고 ‘르윈스키’의 악몽=트럼프는 지난 2일 인디애나 주 경선을 앞두고 ‘힐러리 저격수’로 유명한 에드워드 클라인 뉴욕타임스(NYT) 출신 기자를 만났다. 트럼프와 점심을 함께한 클라인은 ‘힐러리의 진실’(The Truth abouth Hillary)를 쓴 저자로, 클린턴을 권력중독자이자 이중 인격자로 묘사한 바 있다.
클라인의 책은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행보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클라인이 아닌 트럼프의 입을 통한 네거티브 공격은 클린턴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전문지 배런스는 3일 월스트리트저널과 NBC뉴스가 지난달 10~14일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클린턴을 “정직하다”고 평가한 유권자는 19%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35%를 기록한 트럼프보다 한참 뒤쳐지는 수치다. 트럼프의 막말 파문에도불구하고 유권자들이 클린턴보다는 트럼프의 말에 귀기울일 수 있다.
배런스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클린턴과 트럼프의 비호감도는 각각 55%와 65%에 달했다”며 “누가 더 밉상으로 보이냐의 싸움에서 스캔들에 여러차례 휘말린 클린턴이 밀릴 가능성이 있다”이라고 분석했다.
②경력으로 승부하던 美 정치, 힐러리의 발목 잡나=지난 2008년 대선 경선에서 정치 경룬을 승부로 걸었던 클린턴은 새로운 변화를 내세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같은 상황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09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총책임자였던 데이비드 플라우프는 민주당에 클린턴과 트럼프의 경쟁에서 승리를 단언할 수 없다고 끊임없이 경고했다. 그는 “클린턴의 정치경력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테러의 공포와 경제불안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정치적인 순간에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 정치인을 택하겠는가, 경험이 부족한 냉혈한을 택하겠는가”고 지적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의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선거유세 중 63.2%가 네거티브전이다. 클린턴은 네거티브전은 전체 선거유세의 53.9%를 차지한다. 객관적으로는 트럼프가 더 비열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역임할 당시 발생한 이메일 파동과 벵가지 사태 때문에 유권자들이 클린턴을 더 부정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고 WSJ은 우려했다.
③고립주의 외치는 美 여론과 국제주의 택해온 클린턴의 행보=현재 미국 내에서 반(反) 무역정서가 강하게 작동하면서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는 두 주자 모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외교’다.
클린턴은 20세기 미국 외교사를 정의하는 이른바 ‘가치동맹’(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 공유를 명분으로 펼친 개입주의 행보)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영부인과 국무장관 시절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며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고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번 대선에서도 클린턴은 동맹국들과의 공조와 파트너십 강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여론은 이를 반기지 않는 눈치다.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60%는 일본과 중국의 센카쿠 열도 분쟁을 둘러싼 군사개입에 반대했다. 남한이 북한의 공격을 받을 경우의 미군파병에 대해서는 찬성이 48%이고 반대가 47%를 기록해 입장이 팽팽했다.
④테러리즘의 악재=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로 고조된 ‘테러 공포’와 반(反)무슬림 정서도 클린턴에게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클린턴은 전 국무장관 시절 리비아의 카다피 등 중동ㆍ아프리카 독재자들을 제거하는 강경책을 펼치면서 IS 등 테러조직들이 성장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민 57%는 “무슬림들의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했다. 하지만 대다수(51%)의 미국민은 힐러리와 오바마가 추진한 시리아 난민 수용안에도 반대했다. 무슬림에 대한 ‘증오발언’을 반대하지만, 지난 3월 브뤼셀 테러와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로 시리아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생긴 것이다. 배런스는 “테러대응 정책에서 트럼프는 유리한 위치를 가질 것”이라며 “만약 올 가을에 테러사건이 발생한다면 트럼프의 승률은 크게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⑤‘사업가’ 트럼프, 경제 혁신ㆍ 국가 변화에 유리= 미국 뉴욕의 타블로이드 신문 뉴욕포스트의 기자였던 수전 멀케이 기자는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트럼프를 뉴욕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며 “트럼프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 언론과 타블로이드 지는 1970~1980년대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의 화려한 생활과 스캔들을 집중보도했다. 인기를 얻은 트럼프는 이후 미국 TV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어프렌티스’를 진행해 서바이벌 참가자들 중 한 명을 ‘꿈의 직장’에 고용하는 이른바 ‘경영 사령관’의 면모를 과시했다. 오랜시간동안 방송을 통해 사업가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한 덕분에 3일 WSJ/NBC 뉴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트럼프(37%)가 클린턴(22%)보다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런스 역시 ”클린턴은 FTA와 TPP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찬성하고 있다”며 “경기 불황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클린턴이 급진적인 경제 혁신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이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목격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봐야 할 때”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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