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를 것이라 믿었다. 미궁에 빠진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 사고를 접하며 ‘아직도 이런 나라가 있구나’ 싶었다. 탑승자 239명이 흔적없이 사라진 지 45일이 지났지만, 추락 지점은 커녕 사고원인 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왕좌왕하는 말레이 당국의 대응을 보면서 1인당 국민총소득(GNI) 1만달러 국가의 현주소라 여겼다. 하지만 ‘인재(人災) 종합세트’로 드러나고 있는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우리는 다를 것’이란 기대는 참담히 무너졌다.
이 어이없고, 기막힌 참사 앞에 대한민국은 오열하고 있다. 전 국민은 집단 우울증에 걸렸다. 피지도 못한 꽃다운 나이에, 그것도 손 한번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아들ㆍ딸을 속절없이 떠나보내야하는 가슴은 새까맣게 타버렸다. 침몰하는 선실에서 구명조끼를 입은채 웅크리고 앉아 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진다. 배를 버리고 탈출한 선장이 남긴 ‘대기하라’는 말만 철썩같이 믿다가 스러져간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나.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쏘아올린 ‘과학 한국호’의 위상은 고작 수심 30m 진도 앞바다에선 허울뿐인, 빛 좋은 개살구였다. ‘1분 1초’를 다투는 절박한 해양 구조에서 수색대가 3,4층에 진입하는데만 꼬박 엿새가 걸렸다. 차가운 바닷속에서,언제 올지 모를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렸을 아이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어른들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애절하고, 죄스런 마음에 몸서리가 쳐진다.
허둥지둥 정부 대응을 보면서 분통 터지지 않은 국민이 있었을까. 일부 공직자의 작태는 분노를 넘어 절망스럽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자리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은 반드시 퇴출시키겠다”는 작심발언까지 했을까.
선진국도 각종 재난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완벽한 재난 구호 시스템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켜 낸다. 지난 2009년 1월 미국 여객기가 엔진 고장으로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을 당시 150여명의 탑승자가 모두 살아 남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허드슨강의 기적’은 기장의 리더십과 승무원의 침착한 대응 때문에 가능했다. 불시착 3분 만에 구조선과 헬기를 투입한 현장중심의 신속한 재난 대응 시스템도 빛을 발했다. 일본은 ‘해난사고 구조율 96%’ 신화를 자랑한다. 미국의 연방재난관리국(FEMA)과 유사한 해상보안청의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현장 중심 시스템이 이룬 성과다. 우리는 어떠한가. 20년전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 페리호의 교훈을 잊은채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외신이 ‘지옥(hell)’이라고 묘사한 이번 사태는 선장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만든 이후 25차례나 개정했지만, 세월호 침몰 앞에선 무기력한 민낯을 드러낸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한국의 자화상이다. 이 따위 말도 안되는 인재에 또다시 대한민국의 아들ㆍ딸을 앞세우는 죄악을 되풀이할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진도 앞바다에서 희생된 어린 영령들이여. 부디 용서치 마소서. 이 어처구니 없는 어른들을…”
강주남 국제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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