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우리는 산과 들로 쏘다녔다. 그것은 우리의 안방이자, 놀이터였다. 산과 들이 싫증나면 동네 입구 마을회관에 모였다. 동네에서 가장 널찍했다. 그곳에서 우린 술래잡기를 했다.

내가 너댓살때 쯤일게다. 그날 술래는 나였다. 헝겁으로 눈을 묶은채 숨은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발에 약간 걸리는 느낌이 있었으나, 계속 전진했다. 아, 뭔가 푹 꺼지는 듯한 느낌. 그대로 추락했다. 마을회관 앞 큰 우물에 빠진 것이다. 평소엔 큰 나무판으로 우물을 덮었으나, 그날따라 나무판을 걷어낸 것이다. 추락때의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몸이 허공을 한 번 딛는가 하더니, 몸 속 뭔가가 쑥하고 빠져나가는 공포. 차가운 물과 머리가 마찰했을때, 어린 마음에도 “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수초가 지났을까. 갑자기 며칠전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내 새끼들 노는 데, 우물에 두레박 매놨어”. 사력을 다해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두레박 줄이 손에 닿았다. 그것을 타고 올라왔다. 죽다 살았다. 세월이 약인가 보다. 악몽이었지만 점점 나이가 들자, 그것도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두메산골엔 우물이 정말 많았다. 내 집 마당엔 물론, 동네 곳곳이 우물이었다. 강촌은 물론 대촌마을에도 선바위마을에도 큰 우물이 있었고, 아주머니들은 그곳에 모여 빨래도 하고 수다를 떨곤 했다.

그런 우물이 지금은 없다. 시골에도 상하수관이 연결됐기에 굳이 우물을 팔 필요가 없어 그런 측면도 있지만, 물이 안나온단다. 사람들은 이를 물부족국가가 된 증거라고 했다. 그 옛날 산에서 머금고 있다가 냇가로 흘려보내고, 그 중간에 가둬놓은 물이 우물로 샘솟았는데, 지금은 산이 물을 가둬둘 틈이 없다고 한다. 환경파괴가 그렇게 만들었단다.

지난 주말 황사와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었다. 공기가 안좋은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주말은 심각했다. 사상 최악이었다. 바깥나들이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기가 나빠 징글징글했다”고 했다.

황사야 몽골 사막 원인으로 돌릴 수 있지만, 미세먼지는 중국 쪽만 탓할 수는 없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인 25일 하늘은 맑고 햇볕은 쨍쨍했지만 ‘미세먼지는 나쁨’이 한동안 유지됐다. 사막의 모래바람 외에도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지구 공기의 악화가 주범인 중 하나인 셈이다. 지난 22일은 지구의 날이었지만, 지구를 지키는 데 우리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가 잘못됐다고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우리사회 나아가 전지구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미래영화에서 보는 회색도시, 매캐한 도시는 인류의 숙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가 병들어 간다는 것은 그 옛날 우물이 천지였던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나로선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런 와중에 가습기 살균제 논란이 시끌시끌하다. 정확한 사실은 검찰에서 규명해야 겠지만,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이 순간에도 인간의 탐욕은 황사와 미세먼지 그 이상의 ‘암살자’들을 양산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가수 홍진영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겠다.

“황사ㆍ미세먼지, 너 정말~”

이런 유머로 끝나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그건 꿈이다. 지구 재앙은 점점 닥치고 있다.

김영상 사회섹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