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화장기 없는 얼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마주 앉았다. 가죽재킷 하나만 입었다가 날이 너무 추워 두꺼운 패딩점퍼로 몸을 꽁꽁 감쌌다. 마스크만 쓰면 외출복장이 완성된다. 20대 여대생이 열광한다는 ‘홍설’ 스타일은 아니다. “요즘 눈만 마주쳐도 알아본다”고 한다. 싱그러워 관능적이었던 소녀(은교)의 얼굴은 고단해도 사랑스러운 청춘(홍설)의 얼굴로 대중성을 얻었다. “마스크를 꼈는데 어떻게 알아보죠? 마스크 때문에 알아보나. 참 의문이에요.” 배우 김고은을 만났다.
워낙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드라마였다. 자신을 향했던 캐스팅 논란은 연기로 보여줬다. 종영 날짜가 다가올수록 남자주인공의 분량 실종, 원작자는 물론 배우와 제작진 간의 불화가 화제였다. tvN 월화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냈다는 기적같은 기록이 무색하게도 잡음이 많았다. 드라마 방영 중 미뤄둔 인터뷰 일정을 진행하는 김고은은 여주인공으로서, 난데없는 폭탄을 끌어안게 됐다. 뻔히 던져질 예상질문엔 술술 답을 늘어놓지만, 불편한 질문이라도 나오면 ‘홍설의 미소’를 짓는다. 홍설 캐릭터의 힘을 아는 배우다.
“재밌는 얘기하면 안 돼요? 제가 너무 진이 빠져서…”
뻔한 얘기들을 시작했다. 드라마를 둘러싼 첫 번째 논란. 여주인공 김고은에 대한 것이었다. 싱크로율 제로에 가까운 캐스팅. ‘커피프린스 1호점’, ‘트리플’, ‘하트투하트’을 연출한 이윤정 감독과 “꼭 한 번 작업하고 싶었다”고 한다. “감독님이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결정한 이후엔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연기적인 부분으로 보완하자고 생각했아요. 제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편이에요.”
2012년 ‘은교’로 데뷔한 충무로의 신성은 4년간 수편의 영화를 만나며 성장을 거듭했다. “그동안 막연한 역할을 많이 해왔죠. 홍설 역할도 그랬을 거예요. 한 번도 쉽게 생각하고 쉽게 연기한 적은 없어요. 인물들의 감정에 의문을 가지고, 한 번 더 틀어서 접근했어요. 왜 슬픈 거지, 어떻게 슬픈 거지 끊임없이 묻는거죠. 그런 과정을 거쳐 인물을 설정해왔고, 그게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방송을 시작하자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김고은의 ‘홍설’은 시청자를 움직였다. 극성팬을 ‘치어머니’라고도 불렀다. ‘치즈인더트랩’과 ‘시어머니’의 합성어, 원작 마니아를 부르는 말이었다. 그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홍설이 가진 성격의 포인트가 필요했어요. 웹툰을 보면서 홍설에게서 연민이 느껴졌어요. 보호해주고 싶었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 하게 됐다는것, 한 사람이 자신의 이상에 대해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도 삐뚫어지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것. 그 모든 상황에 대한 연민이요. 나라면 이 친구처럼 하지 못했을 거예요.”
홍설에 대한 연민은 김고은이 자란 환경의 고마움에서 나왔다. 한 살 위의 오빠는 “네가 죽네 내가 죽네” 하며 아웅다웅 어린시절을 보냈어도 “항상 지켜주고, 서로의 고민을 상담하는 관계”였다. 광주에서 살던 소녀는 분당의 계원예고로 유학을 떠났다. 배우의 꿈을 꾸던 딸을 향한 부모님의 든든한 지지가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속상해하실까요. 음… 지원을 많이 받진 못했지만 부모님께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주셨어요. 저 역시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고요. 조금 더 하면 더 좋은 선생님한테 배울 수 있었겠지만, 용돈이 부족했고요. 대학에 갈 땐 입학 장학금을 받았고,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어요. 좋았던 건 제 꿈에 대한 부모님의 지지와 믿음이었어요. 그것 하나가 얼마나 큰 지 잘 알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꼈죠.”
홍설은 김고은의 생각대로 그려졌다. “사랑스럽게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김고은은 그간 꽤 많은 영화를 통해 주목받았으나 20대 초반의 활기와 더 험한 세상으로 나가야하는 청춘의 고민, 첫사랑을 만나며 겪는 감정의 갈등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김고은 역시 여느 20대와 다르지 않다. 아직은 “사람들이 날 모른다고 생각하고 사는” 여배우다. 남들은 다 한다는 그 흔한 피부관리에도 미숙하다. TV를 보다 “여배우들은 1일 1팩을 한다는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마스크팩을 사러 나갔을” 정도다. 자신의 일(연기)엔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여자인지 모를 정도의 운전실력”을 겸해 으쓱한다. 특히 운전 중 “무시 당하는 건 잘 못 참지만”, “일일이 감정을 소모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쿨한 20대다. “그래도 함께 하는 순간엔 100% 진심으로 다가가요. 다가가지 못할 바엔 다가가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드라마의 논란으로 돌아갔다. 김고은의 생각을 물었다. “아…글쎄요. 저는 뭐. 어쨌든 촬영을 할 때는 잘 몰랐고, 반응을 보고 알았어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전 떨어져 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 있었던 사람이니까요.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이게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 모든 상황들 자체가 아쉬운 것 같아요.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상황들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 아쉬운 것 같아요. 제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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