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판결 받은 사건 맡아 외로운 싸움… ‘진범 찾아올까’ 하루 몇번씩 악몽꾸는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정의찾기’

“이러면 안 되는데…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상황이 조금 급박하게 돌아가네요.”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42ㆍ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 안절부절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살인 사건’의 진범 이모(48) 씨를 만나기 하루 전이었다. 이 씨는 가짜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던 ‘삼례 3인조’를 만나 사죄할 예정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묘소도 찾아가기로 돼 있었다.

“자기도 얼마나 부담이 되겠어요. 자기 때문에 옥살이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가신 분 유가족을 만나는데. 살인사건이잖아요.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고 그러면 사달이 날 것 같아 신경 쓰이네요.”

‘친부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사건,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등의 재심을 진행한 박 변호사에게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수원 영통 원천동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스스로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보낸 편지와 관련 서류들로 가득했다.

지적장애 청소년이 강도 살인범으로=삼례 나라 슈퍼 사건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 부부는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를 고모(당시 77세)와 함께 운영했다. 그해 2월 6일 새벽. 김씨의 목에 차가운 물건이 닿았다. 경상도 억양의 범인은 “움직이면 죽여버린다”고 말했다. 강도가 빠져나간 뒤 보니 고모는 청색 테이프에 질식해 숨진 상태였다.

사건 발생 9일 만에 용의자가 검거됐다. 전주지검과 완주경찰서는 ‘삼례 3인조 강도’라며 이웃 주민인 정신지체 5급의 A(당시 18세)씨 등 3명을 긴급체포했다.

삼례 3인조는 아니라고 했다. 형사들의 발길질이 날아왔다. 글씨도 모르는 이들은 형사가 써준대로 보고 ‘그리며’ 자술서를 작성했다. 검사는 억울하다는 이들의 말을 무시했다. 구속 9개월만에 삼례 3인조는 각각 징역 6~3년형을 선고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00년 1월. 부산지검이 마약사건을 수사하다 강도살인 사건 진범들을 잡았다. ‘부산 3인조’는 삼례 나라슈퍼에서 저지른 강도 범행을 자백했다. 부산지검은 이들을 전주지검으로 보냈다. 삼례 3인조를 수사한 검사가 다시 사건을 맡았다. 부산 3인조의 자백에도 담당 검사는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10여년이 흐른 뒤, ’재심 전문’ 박 변호사에게 사건이 닿았다.

“재심 전문이라는 타이틀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과를 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알다시피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거쳐서 확정된 판결을 받은 것을 뒤집는다는 건 정말 힘들거든요. 이 과정에서 과거 사건을 맡았던 판사, 검사, 변호사, 동료 법조인을 곤란하게 한다는 것도, 그리고 과연 재심을 바라는 이 사람이 정말 억울한 사람인지 확신하기도 어렵죠.”

파리만 날리던 국선 변호사=박 변호사가 처음부터 재심 전문이 됐던 것은 아니다. 박 변호사는 2006년 수원에서 사무실을 열었다. 처음엔 사무실에 파리만 날렸다. 국선 사건들만 맡았다. 그러던 2007년 5월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도 수원시 모고등학교에서 신원 미상의 15세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날 저녁 지적장애인인 20대 노숙인 2명을 체포했다. 다음해인 2008년 1월 공범이라며 노숙 청소년 5명을 추가로 잡아들였다.

노숙 청소년 5명의 국선 변호인으로 박 변호사가 선임됐다. 경찰과 검찰의 기록은 아이들이 범인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죽인 게 아니라고 했다.

“모호한 표현을 쓰면서도 특징적인 부분을 언급합니다. 조서상으로는 아이들이 ‘어느 고등학교였던 것 같은데. 자세히 생각은 안 나지만 화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계단을 올라같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 걸로 돼 있다. 그런데 당시 진술 영상을 보면 수사관이 묻습니다. ‘화단이 있었던 것 같아?’ 아이가 답한다. ‘네’, 수사관이 다시 묻죠. ‘계단이나 이런 것 특이한 것 기억나는 것 없어?’ 애들은 잘 모르니까. ‘계단 기억나는 것 같아요.’ 애들을 그냥 보내버리는 조서다.”

박 변호사는 사건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은 모두 무죄를 받았다. 징역을 살고 있던 노숙인 2명도 출소 후에 재심을 거쳐 결국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진범 찾아올까’ 악몽에 시달려도 “가야죠”=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 무죄와 재심을 이끌어 내면서 박 변호사는 유명세를 탔다. 일반 형사 사건들이 밀려들어 왔다. 감당이 안 돼 변호사 2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사무실도 넓은 곳으로 옮겼다. 돈도 잘 벌렸다. 그러나 박 변호사에게 자꾸 억울하단 사람들이 찾아왔다.

“고용 변호사들에게 형사 사건을 맡게 해서 사무실 운영비 벌고, 저는 재심, 허위자백 같이 공익 활동 비슷하게 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자꾸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송사라는 게 그렇거든요. 정말 억울한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간교하게 법을 피해가는, 보호해줘야 하나 싶은 사람들까지 변호해야 하거든요.”

결국 박 변호사는 고용 변호사들을 내보냈다. 사무실은 적자가 났다. 직원도 내보냈다. 동생이 가끔 와서 일을 도와주는 정도다. 임대료도 밀렸다.

“이 건물 1층 가게가 사실 건물주입니다. 제가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보시는데, 딱히 뭐라고 말씀을 안 하십니다. 감사하죠. 어련히 어려운 줄 아니까 그러신 거죠.”

밀려드는 편지 중에서 박 변호사는 김신혜 사건이 눈에 띄었다.

김신혜(당시 23세ㆍ여)는 친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여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했다는 혐의로 15년째 수감 중이다. 대법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주심 대법관도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이들이다. 사건 자체의 무게감도 남달랐다. 혼자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 변호사의 표현을 빌리면 ‘변호인단도 짱짱하게’ 갈 필요가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로 찾아갔다. 상임이사회에서 5분의 발표시간을 얻었다. 변협 차원의 변호인단이 꾸려졌다. 1차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지고 검찰이 이에 불복해 현재 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박 변호사는 또 택시 기사를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으로 누명을 쓴 최모(당시 15세)씨의 재심 확정 판결도 이끌어냈다.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도 밝혀냈다. 증거를 모으려고 진범의 주변인들을 만났다.

“살인범을 공개하고 또 만나러 간다는 일은 굉장히 두려운 일입니다. 하룻밤에도 몇번씩 악몽을 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지더군요. 올 놈이었으면 진작 왔겠지. 그리고 온다고 해도 말릴 수도 없고.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박 변호사는 또다시 삼례 나라슈퍼 강도살인 사건의 진범과 통화를 시도했다. 한참만에 진범이 전화를 받았다. 유족들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재심 개시에 협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굳어 있던 박 변호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제 남은 일이요? 진범 풀어준 사람들만 만나는 일이죠. 한번 봅시다. 어떻게들 나오나.”

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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