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개국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댄 6자 회담은 시작부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란 기대와 함께 별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무용론을 함께 지적받았다.
6자회담 구상은 2002년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 당시 북한이 우라늄 핵 프로그램 개발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작된 2차 북핵위기로 촉발됐다. 2003년엔 북한이 NPT를 탈퇴하면서 한반도 위기는 고조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묘안이 6자 회담이다. 2003년 8월 첫 회담에선 한반도 비핵화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6개국 모두 공감하고 대화를 통해 북핵 폐기를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이어 2005년 7월 역사적인 6개항의 ‘9ㆍ19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공동성명을 통해 6개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포괄적ㆍ단게적 해결 등 주요 원칙에 합의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했다. 9ㆍ19 공동성명은 6자회담이 거둔 첫 성과물이다. 당시 “오늘은 위대한 날”(크리스토퍼 힐 미측 수석대표), “평화체제를 위한 발판을 닦았다”(송민순 우리측 수석대표), “한국 외교의 승리”(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 등의 호평이 잇따랐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의 금융제재가 시작되면서 화해 분위기는 점차 떨어지다 북한이 그해 10월 쏘아올린 대포동 2호 미사일과 1차 핵실험으로 완전히 바닥을 쳤다.
파행과 재개를 거듭한 6자회담은 2008년 북한이 HEU(고농축 우라늄)프로그램에 대한 신고 등 과학적 검증을 거부하면서그해 12월 제6차 6자회담 3차 수석대표회의를 끝으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이후 미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요구하고 북한은 미국과 양자회담을 주장하면서 6자회담은 계륵으로 변해버렸다. 2011년엔 조시 부시 행정부 시절 6자 회담을 진두지휘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동아태 차관보다 공개적으로 “6자회담 프로세스는 끝났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6자회담이 북핵문제 해결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9ㆍ19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등 그간 가시적 성과를 낸 대화창구란 점에서 실패락고 단정짓긴 무리란 지적도 있다. 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6자회담이 뇌사상태에 빠진 것은 맞지만 우리가 굳이 산소호흡기를 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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