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 방송 3사와 케이블TV 업계의 전쟁이 ‘접입가경’이다. VOD(다시보기)를 중단한데 이어, 프로그램 사이 광고를 가리는 ‘변형 블랙아웃’까지 등장할 태세다.
1400만 가구가 넘는 케이블TV 시청자들은 이래저래 제대로 된 방송을 보기 힘들게 됐다. 내기 싫어도 전기 때문에 어쩔 수 없 이 내야하는 시청료 2500원과, 그래도 잘 잡히지 않는 ‘무늬만 공중파’ 때문에 또 다시 월 1만원 정도하는 케이블TV 수신료를 세금처럼 꼬박꼬박 내고도 말이다.
이 정도면 정부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약 절반인 1400만 가구의 TV 시청이 지장을 받는 ‘방송 대란’이 일부는 현실로, 또 일부는 머지않은 장래에 발생할 상황이다. 주무부서인 방통위는 당연히 ‘비상’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방통위의 겉 모습은 한가하다. 시장 사업자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갈등으로 정부가 나설 일도 아니고, 근거도 없다는 말이다. 반신불수가 된 케이블TV 대신 위성이나 IPTV가 있고, 또 시덥지 않은 프로그램에 꼬박꼬박 몇 천원 씩 과금하는 공중파 방송국 VOD를 대신할 케이블 채널이나 외국 방송사 프로그램 같은 대체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그러서 그 흔한 ‘행정지도’도 아직까지는 안보인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너무나도 충실하게 따르는 한가한 심판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 아담 스미스의 추종자가, 때로는 경기를 지배하는 ‘신’이라고 자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감독이나 PD가 만든 예술작품에 ‘옛 가치관’을 앞세워 모자이크를 덧대는건 애교다. 방송사와 방송플랫폼의 밥그릇인 광고의 총량도 규제하고, 이것도 모자라 한 숟가락에 들어가는 밥알 수까지 칼처럼 잘라낸다.
또 더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방송사간 경쟁을, 국익이라는 잣대를 앞세워 ‘담합’해 나눠먹도록 권장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700㎒ 주파수 같은 1조원이 넘는 국가와 우리 사화의 자산을, 특정 방송사들에 헐값에 주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시장’, 즉 소비자 또는 시청자만이 구매라는 행위로 방송사와 방송플랫폼의 경쟁을 심판하는 아담 스미스의 이론과는 180도 다른 현실의 ‘신’이다.
현대 사회는 있으나마나 한 방관자 같은 신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시어머니 같은 신도 원하지 않는다. 가운데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규제를 하는 ‘스마트한 신’을 우리 헌법은 정부의 역할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스마트한 신’은 어느 한 쪽의 이익이나 손해를 생각하기보다는, 힘을 위임하고 따르는 ‘우매한 대중’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시청료에 유료방송료까지 내며 나오지 않는 VOD, 그리고 재미있는 CF가 사라진 실시간 방송을 봐야만 하는 위기에 빠진 시청자들은 ‘쿠오바디스(Quo Vadis) 방통위’(방통위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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