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오연주 기자] 초저유가시대의 도래는 국내 정유업계에 기회인 동시에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저유가의 수혜를 받고 있는 정유사들은 유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불안한 호황을 맞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1.27달러(3.4%) 낮아진 36.60달러에 마쳤다. 미국의 원유재고 예상 밖 증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현 산유량 고수 등에 따른 전세계 공급 우위 전망에 따른 것이다.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정유업계는 지난해 5조원(추정)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2011년 이후 4년만의 최대실적이다. 과거에는 저유가가 정유사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저유가로 인한 소비 증대 효과와 높은 정제마진으로 오히려 반대가 됐다. 특히 최근의 저유가는 공급과잉에 따른 것으로 2008년 수요 감소로 유가가 하락한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급격한 유가 변동이 없다면 정유사는 2016년에도 전년 못지 않은 실적을 거둘 전망이다.

유가가 하락하면 재고손실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지만, 현재는 실적의 키를 쥐고 있는 정제마진이 높게 유지되면서 이를 상쇄하고 있다. 특히 원유가격이 떨어지는 속도에 비해 석유제품 가격은 천천히 떨어지는 후행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은 더 커진다. 복합정제마진은 최근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배럴당 10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유가 하락에 따라 중국과 중동 주요 기업의 설비 증설이 지연되거나 중단된 것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또한 미국의 원유수출 허가, 1월 이란의 원유수출 본격화 등 원유 구매처가 다변화 되는 것도 수익성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원유 수입선이 다변화되면 그간 중동 산유국들이 한국이나 일본정유업체에 더 비싸게 원유를 공급한 ‘아시아 프리미엄’도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는 정유시설 고도화, 원유수급처 다변화 등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한편 석유화학 부문도 강화하는 등 외부 경영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다만 유가 전망이 불확실하다는 점은 정유업계가 올해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유가가 급격히 하락할 경우 정유사 입장에서는 재고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정유사들은 일일 정제량의 25배인 6250만배럴 정도의 재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유가가 1달러 떨어지면 6250만 달러(한화 650억원)의 재고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달 들어서 두바이유가 7달러 가량 하락하는 등 유가 하락으로 인해 재고손실이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저유가가 장기화될수록 신규 생산 능력이 축소되어 향후 구조적인 공급 부족을 초래해 유가 급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특히 향후 저유가에 따른 디플레이션, 수요감소가 나타날 경우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재고손실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정제마진이 커져 당분간 실적은 더 좋아질 수 있다”며 “다만 저유가가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경우, 저유가가 수요 증가와 정제마진 호황으로 이어지는 공식은 깨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