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원승일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뚝심과 리더십으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등 경제개혁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하면서 그의 개혁성과가 빛을 바래기도 했지만 그가 추진했던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개혁 등 경제구조개혁 과제는 지금도 여전한 과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과 부동산의 양대 실명제를 통해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정치와 경제의 유착을 단절하려 한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했다. 1982년 ‘이철희 장영자 부부의 어음사기 사건’ 발생 이후 가명이나 차명이 아닌 실명을 사용하고, 금융회사는 이를 의무적으로 확인하는 금융실명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금융실명제 도입은 지하경제를 줄이고, 금융거래 및 과세의 투명성을 높이는 발판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금융에 이어 1995년 1월 부동산 거래에도 실명제를 도입했다. 부동산 거래를 매매 당사자의 실명으로 하게 함으로써 탈세, 탈법 등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다는 의지였다. 더구나 금융실명제 실시 후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던 상황이었다.
그는 기업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규제개혁에도 적극적이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민간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창업과 공장입지, 자금조달 등 관련 행정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러한 개혁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경제의 누수를 막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것이다.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다양화하면 할수록 부실부문을 정리하고 새롭게 성장하는 경제영역을 키워야만 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경제개혁이 꽃을 피우기 전에 임기 말 IMF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함으로써 그 빛이 바랬다는 평가다.
경제개혁의 궁극적인 목표가 경제효율성을 높여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위기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확충하는 것이지만, 미완의 개혁에 머물고 말았다. 때문에 경제개혁은 IMF의 구조개혁 프로그램에 의존해 타율로 진행해야 했다.
대내외적 경제 변화에 김 전 대통령이 보여준 대처 능력도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재임 5년 간 경제부총리가 6번 바뀌는 등 경제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했고, 무리하게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김 전 대통령이 남긴 경제개혁 과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지적한다. 시대와 경제상황이 달라지면서 구체적인 개혁의 과제와 방향에서 변화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경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개혁이 중단없이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특히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공공과 노동, 금융 등의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나 보다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외에도 근본적인 재정개혁을 통해 적자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해야 하며, 복지 부문의 수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호상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IMF 사태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대출로 연명하고 있는 한계기업을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생산성과 경쟁력 있는 기업은 지원해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며 “임금피크제와 함께 인력의 생산성과 성과를 정확히 평가하는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개선하는 등 강도 높은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