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브라운관 여심(女心)은 이 남자들 때문에 설렜다. 2030의 마음은 지 부편(부편집장)이 가져갔고, 조금 겹친 3040의 마음은 국민 불륜남이 훔쳤다. 두 남자는 한결같이 첫사랑을 놓치 못했다. 올 하반기 최고의 남자배우로 수많은 여심을 도둑질한 지진희와 박서준이다. ▶ 지진희, ‘눈빛임신’이라뇨?=‘배우는 눈으로 말한다’고 했다. 지진희(44)의 애틋한 눈빛 한 번에 30~40대 여성들의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국민 불륜남’으로 지탄받던 남자는 ‘국민 첫사랑’ 반열에 올랐다. 드라마는 급기야 ‘감성막장’으로 불리고, 지진희는 과격한 별명을 여럿 안게 됐다. ‘눈빛 임신’, ‘’심장폭행남‘으로 불린다. 지진희는 “세고 무서운 별명”이라며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지진희의 멜로연기가 빛을 발한 건 SBS ’애인있어요‘를 통해서다. 40대 중년남자가 이토록 순수하게 첫사랑을 갈망하자 안방극장이 발칵 뒤집혔다.
지진희가 연기하는 최진언은 드라마 초반 ‘국민욕받이’였다. 첫사랑 아내(김현주, 도해강 역)을 두고 한참 어린 후배(박한별, 설리 역)와 바람이 났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아내를 “제발 좀 치워달라”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드라마가 반전을 맞은 건 4년 후로 시계를 돌리면서다. 기억을 잃은 아내를 만나 애틋하면서도 순수한 멜로연기를 선보이자 중년여성들의 반응이 180도 달라졌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동네 아주머니가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하는데, 눈빛이 변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는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우겼어요. 사실 우긴 게 아니라 시놉시스의 방향이 그랬죠. 오로지 해강만을 사랑하는 캐릭터였어요. 해강과의 관계에 지치고 지쳐서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던 상황에 마침 설리가 그 곳에 있었던거죠.”
지진희는 드라마 시작 전부터 한결같았다. ’아내와의 불륜‘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이 ‘애인있어요’를 막장드라마로 치부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는 그러나 지진희의 이야기처럼 짧은 시를 읊는 듯한 감성적인 대사, 담벼락에 기대 이어폰을 나눠끼는 40대 중년들의 설레는 연애모습을 담아내는 섬세한 연출로 시청자를 움직였다. 배우들의 연기까지 어우러지니, 7~8%대의 시청률만이 아쉬운 드라마가 됐다.
지진희는 “해강을 향한 진언의 사랑을 보여주는 데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다른 인물들도 각자 저마다의 고통과 아픔이 있어요. 일반 사람들이 모두 다 겪을 수 있는 감정들은 아니겠죠. 그래서 상대배우가 중요해요. (김)현주씨를 사이에 두고, (이)규한씨와 현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신경전을 벌여요. 현주씨의 몫이 가장 중요하죠. 저에게 모질게 굴었고, 사랑을 줬고, 아픔을 고스란히 줬기 때문에 감정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었죠.” 물론 지진희에게 드라마 속 최진언은 “남자들이라면 다 싫어할만한, 이해할 수 없는 남자”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안방을 찾아온 어른들의 짙은 사랑이야기로 지진희는 40대의 대표 멜로배우로 떠오르게 됐다. 3040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현재는 지진의에게 ‘제2의 전성기’라고도 할 만하다. 30대엔 ‘대장금’, 아직 가야할 40대의 길은 더 많이 남았지만 지금까지로만 놓고 보면, “40대 대표작은 ‘애인이었어요’”라고 한다. ’대장금‘은 “지진희라는 배우를 알려준 작품”이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아니었어요. 그나마 다행인건 예전보다 나아졌고, 앞으로도 나아질 예정이라는 거죠. 다른 배우들처럼 연기를 전공한 사람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도 아니어서 잘 몰라요. 하지만 이번 드라마에선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절절한 멜로는 동서고금, 나이를 막론하고 늘 있어온 일상이잖아요.” ▶ 박서준, 새로운 ‘로코킹’…‘지부편’을 앓았다= 로맨틱코미디가 시들해졌던 안방극장에 연애세포를 되살려놓은 드라마가 등장했다. 최근 종영한 MBC ‘그녀는 예뻤다’. 가을야구까지 밀어낸 이 드라마에서 박서준(28)은 숨은 첫사랑(황정음, 김혜진 역)과 숨박꼭질을 하는 잡지사 부편집장 지성준을 연기했다. 그의 별명은 ‘지부편’, 드라마로 인해 ‘지부편 앓이’라는 말이 생겼다.
올초 종영한 MBC ‘킬미, 힐미’에 이어 황정음과는 두 번째 호흡이었고, 박서준은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남주인공을 연기했다. 겉으로는 독설마저 서슴치 않지만, 은근히 허당기를 품었으며, 첫사랑을 갈구하는 환자 수준의 순정남이었다.
“제 첫사랑이요? 학창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떠올려봤었죠. 중학교 때였어요. 남녀공학을 다녔는데, 그저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기만 했어요. 표현도 못하고요.”
그 시절의 순수한 경험이 박서준의 연기로 녹아났다. “성준이 어떤 마음으로 혜진을 바라보고 느꼈을까 이해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의 박서준이라면 ‘지 부편’처럼 첫사랑을 못 알아보진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다.
“드라마니까 몰라본 거지, 현실에선 이력서만 봤어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요. 진짜 혜진에게서 내가 기억하는 사람의 향기가 났지만, 다른 사람이 첫사랑 혜진이라고 말하니 헷갈렸던 거예요. 제가 성준이라면 첫사랑이 아닌 사람에게 흔들리는 내 모습에 실망하거나 자책하는 모습이 있었을 것 같아요.”
박서준의 성장은 빠르다. 2012년 데뷔한 이후 ‘금 나와라 뚝딱’(MBC), ‘따뜻한 말 한마디’(SBS), ‘마녀의 연애’(tvN), ‘킬미 힐미’(MBC)를 거친 뒤 ‘그녀를 예뻤다’를 만났다. 충무로에선 ‘악의 연대기’와 ‘뷰티 인사이드’를 찍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안방극장에선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통해 스타탄생의 가능성이 점쳐졌다.
“숫기가 없는 학생이었어요. 발표도 못 하고 식당에 가서 주문도 못했었죠. 아버지는 굉장히 엄하셨고, 반항이나 일탈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요. 연기자가 된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일탈이랄까요. 연기를 하며 나라는 인간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더라고요. 이런 감정,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삼남매 중 장남, 항상 모범적이고, 규격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던 박서준에게 연기자로의 삶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겉멋에 빠져 발을 들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진지하게 접근”했기에,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할 때에도 박서준은 고심을 거듭한다. 스스로 느끼는 감정과 이해를 존중하려는 노력이다.
“연기를 잘 하기 위해 선생님들에게 배운 적은 없어요. 군 제대 이후 잠깐 도움을 받은 적은 있는데, 오디션을 위한 준비도 혼자 했죠. 누군가에게 배우는 순간 내 것이 없어진다고 느꼈거든요.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제가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술을 배운다기 보다 저만의 생각을 하고, 제 느낌을 믿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될 성 부른 나무를 먼저 알아본 것은 당연히 업계 관계자들이다. 몇 편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였던 박서준은 점차 “연기할 수 있는 장면의 수가 늘어나고,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이 많아지고, 중심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20대 대표 남자배우가 됐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은 많아졌지만, 고민의 크기는 같아요. 처음보다 많이 무거워졌고요. 배우를 할 수 있는 줄도 몰랐고, 제가 어느 정도까지 (연기가) 가능한 사람인지도 아직 몰라요. 자연스럽게 지금가지 온 것 같아요. 어떤 연기이든 그 나이대에 표현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을 하길 원해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으려고요. 시간이 쌓이면 수많은 작품이 남을 거고, 여러 캐릭터가 나오지 않을까요.” 20대 대표 ‘로코(로맨틱코미디)킹’은 아직은 박서준이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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