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10년 연속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인천국제공항은 영종도에 있다.
‘영종(永宗)’의 한자 뜻은 ‘긴 마루’인데, 이 지명을 정할 때 이미 세계적인 공항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는 촌평도 들린다.
‘세계는 한국으로, 한국은 세계로’ 향하게 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관문이지만, 영종은 슬픈 역사를 품고 있다.
인천광역시 웹진인 ‘아이뷰(i-VIEW)’는 10일자에서 ‘영종진의 아픈 역사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일제 36년의 암흑시대를 예고했던 1875년 운양호의 영종도 침략 사건을 조명하면서, 해적질이나 다름없는 운양호의 만행을 병인양요, 신미양요 처럼 ‘을해왜요(乙亥倭擾)’로 불러야 한다는 영종도 토착민들의 여론을 전했다.
이용남 ’굿모닝인천‘ 편집위원에 따르면, 제비가 많아 자연도(紫燕島)로 불리기도 했던 영종도는 1875년 9월 일본 군함 운양호에 의해 폭격당했다.
운양호의 육전대는 영종도에 상륙해 방화와 약탈을 자행했고 영종진 수병 35명을 죽였다. 일본군은 민간인의 집에 불을 질렀고, 대포 36문과 화승총 130여정 등 노획물과 함께 소, 돼지, 닭을 잡아가 함상에서 축하 잔치를 벌였다.
충분한 방어 인프라 없이 당했지만, 방어사령관만 곤장 백대를 맞고 문책되었기에 사람들은 이 일을 좀처럼 발설하지 않았다.
을해왜요 이후 30여년간 이어지던 영종 전몰장병에 대한 위령제는 1910년 일본에 강제합병되면서 폐지됐고, 무관심에서인지, 영종 주민의 트라우마때문인지 몰라도 해방후 60년동안 부활되지 않았다.
2005년에야 뜻있는 주민들이 용기를 내면서 위령제가 다시 열렸다. 영종진 피격사건이 비로소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편집위원은 ’지난 4월 영종진공원 내에 있는 구읍배터에 35명의 전몰장병들의 넋을 추모하고 위로하는 추모비가 건립되어 역사복원의 출발을 알렸다. 그 옆으로는 태평루가 건립되고 있다. 태평루도 운양호 사건 때 일본군의 폭격으로 사라진 누각이다. 영종도는 고려 때 예성강의 벽란도와 송나라 명주를 연결하는 교통요지였다. 태평루라는 이름은 세상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했던 옛 위정자가 지었을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인천시는 2016년 하반기 영종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영종역사관을 완공할 예정이다. 영종진은 조선시대 효종4년(1653년)에 설치됐고 현종4년(1668년) 방어영으로 승격했다. 진(鎭)은 지금의 대대급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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