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미국 네브래스카 주에 있는 인구 50만명의 작은 도시 오마하는 매년 5월 첫째주 주말이면 전세계가 주목하는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주인공은 유명 록스타도, 할리우드 배우도 아닌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과 주주총회에 모인 주주들이다. 지난해엔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3만5000명의 주주가 몰렸다. 주주들은 파티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이 투자한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 버핏에게 직접 물어보고 잘못은 비판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주주들의 우드스톡’은 그렇게 3일에 걸쳐 열린다.

한국의 주총은 점잖다(?). 그리고 빠르다. 지난 2월 주총을 개최한 기업 대부분은 30분 만에 안건을 처리하고 주총을 끝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난해 주총 역시 1시간 남짓만에 끝났다. 경영진의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출석주주와 주식수 보고, 의장인사, 감사보고 및 영업보고, 이사 선임건과 보수한도 승인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1998년 경제개혁연대가 삼성전자의 부당내부거래 등을 문제 삼으면서 13시간 넘게 주총이 이어진 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주총에 참석할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주요 기업이 주총을 한날 한시에 열기 때문이다. 올해 10대 그룹 소속 12월 결산 상장사 35개 가운데 31개사가 오는 14일에 주총을 연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 12곳은 이날 오전 9시 일제히 주총을 시작한다. 매년 어김없이 반복되는 현상 탓에 ‘주총 데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두 곳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주주는 한 곳만 선택해야 한다. 기업의 주인인 주주가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할 행사에 초대조차 받지 못하는 셈이다. 소액주주의 의결권은 원천봉쇄된다. 부적절한 인사가 이사로 선임돼도, 배당이 적어 불만이어도 기업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또 기업이 주총 안건을 주총 개최일에 임박해서야 공시하면서 주주들이 안건을 검토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행 상법은 주식회사가 주총 안건과 일정을 개최일로부터 최소 14일 전에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기관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올해 삼성ㆍ현대차ㆍLG 그룹 계열사들은 평균 20일 전에야 주총 소집공고 공시를 냈다. 미국 기업들이 최소 한 달 전에 공시를 내는 것에 비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촉박하다.

이 같은 관행은 소액주주뿐 아니라 자본시장의 큰 축인 기관투자자에게도 불만이다. 주총이 폐쇄적으로 진행되다보니 전문가라는 그들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지난 7일 만도의 대표이사 재선임건을 반대한 바 있는데 흔치 않은 일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안건을 검토할 시간도, 의견을 낼 기회도 없다보니 주총이 끝나면 소액주주처럼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 같은 소외감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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