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인터넷에서 표절 검사 프로그램 돌려서 조금씩 고치고 제출하면 안 걸려요. 취업 준비로 바빠 죽겠는데 과제는 너무 많고, 열심히 공 들여도 알아주는 교수님도 거의 없어요.”

서울의 한 상위권 대학 4학년인 박모(26)씨는 인터넷에서 남들이 올려놓은 과제를 유료로 구입한 후 블로그 등에 나온 내용을 첨가해 30분만에 과제를 완성했다.

대학가 만연한 표절…과제부터 논문까지 무한 ‘복붙’
사진=게티이미지

당연히 박씨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문장은 전무했다.

박씨는 인터넷 표절검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표절 의심 문장의 단어와 문장 구조를 조금씩 수정한 뒤 과제를 제출했고 얼마 뒤 A 점수를 받았다.

최근 문학계 뿐 아니라 패션, 음악 등 많은 분야에서 표절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교육기관인 대학에 만연한 표절부터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학가에 이른바 ‘복붙’(복사+붙여넣기)이 등장한 건 오래전 일이다.

웬만한 보고서나 과제는 인터넷에서 돈을 주고 구매가 가능하다.

대학가에서는 과제에 대한 피드백은커녕 다 읽어보지도 않고 제출 여부만을 평가하는 교수들도 상당수다.

표절에 익숙해진 대학생들이 취업을 앞두고 논문에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학사 졸업논문을 쓸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콘텐츠학회가 지난해 발표한 ‘대학생들 정보윤리 의식과 과제표절 실태 분석’ 논문에서 서울 소재 H대학 학부생 165명을 대상으로 과제 표절에 관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7%(127명)가 과제 표절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중 8명 꼴로 과제를 베껴본 것이다.

표절 경험이 있는 학생들 가운데 절반 가량은(51.5%)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다운받아서 제출하거나 베꼈다’고 응답했다.

‘다른 사람의 과제를 베껴 냈다’거나 ‘책이나 인쇄 자료에서 베껴서 제출했다’고 응답한 학생도 각각 40%, 34.5%였다.

‘유료 사이트에서 리포트를 구입한 경험이 있다’는 학생도 17%였다.

논문의 저자 오은주(경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도덕적 일탈이 쉬운 인터넷 환경 뿐 아니라 표절의 심각성에 대한 교육 부재, 표절에 대한 불이익이 없는 무관심한 교수·학습 환경의 문제”라며 “표절에 대한 교육 뿐 아니라 위반시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표절이 범죄라는 의식을 일깨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권 대학에선 학생의 표절이 적발되면 제적당하는 게 당연한 문화라고 지적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내용을 만들어 제출하는 그 과정이 대학교육의 정수(精髓)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자 진리의 상아탑이 되기를 포기한 현 세태와 만연한 표절 문화가 맞닿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평론가 이택광(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는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하면서 교육이 총체적으로 부실해졌다”면서 “고도의 지적 작업을 할 필요성보다는 좋은 학점과 학위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표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