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ㆍ김진원 기자]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이 나오자. 야당측이 검찰과 법원을 싸잡아 비난하고 나선 것은 그간 한 전 총리와 검찰 간 이어졌던 길긴 악연과도 무관치 않다.

수사 시기는 선거철 등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때에, 수사 방법은 한 건의 재판이 맘대로 돌아가지 않자 다른 건에 손 대는 식이었기 때문에, 증거에 따라 유죄판결이 났는데도 야당으로선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 만큼 검찰의 한명숙 잡기는 ‘털어 먼지내기’ 이상으로 집요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9년 5월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이명박 정부 검찰의 전(前) 정권에 대한 수사는 잠잠해 지는 듯 했다.

그러나 검찰은 2009년말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노 대통령 바로 아래에서 총리를 지낸 한명숙 의원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2003년 대북송금 사건 부실수사로 국민적 비난을 받던 검찰이 재벌가 비자금, 불법대선자금 사건을 터뜨리면서 국민 신뢰를 회복했듯이, 검찰이 특정 사안 수사가 좌절됐을 때 다른 일로 물고 늘어지는 경우는 적지 않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총리 재직 때인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재판은 검찰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검찰은 패색이 짙자, 이 사건에 대해 1심 무죄가 선고되기 하루전인 2010 4월 8일, 한 전 총리의 9억원 수수 의혹사건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고 전격 밝혔다. 5만달러건으로 부실 강압 수사 논란 속에 만신창이가 된 검찰이 새로운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야당이 “강압수사를 반성하기는 커녕 별건 수사ㆍ표적 수사를 벌인다”고 비난하자 검찰은 “제보가 들어왔고 공소시효 문제 때문에 신속히 수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시점은 지방선거(6월)를 두 달 앞두고 있었고, 박빙의 선거전이 이어지는 동안 검찰의 수사는 중단됐지만 유권자들의 뇌리에는 이미 깊이 각인된 상황이었다.

서울시장 낙선 후 검찰 수사를 받은 한 의원은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결국 2010년 7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또 다시 기소됐다.

2010년 12월 이 사건 1심 재판에서 자금 공여자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돈을 건넨 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의 겁박에 못 이겨 허위진술을 했다”는 것이 한씨의 주장이다.

검찰은 공소유지가 불가능해졌다고 판단, 3차수사를 방불케하는 증거수집에 나섰고, 결국 2심에서 유죄를 이끌어냈다. 3심까지 이례적으로 법정 진술을 채택하지 않고 검찰 조서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야당은 “법원도 정치화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소수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도 “한씨는 검찰 진술 당시 사용처가 불분명한 비자금의 정당한 사용 내역을 밝히지 못하면 횡령죄로 처벌받을수 있는데다, 수사협조의 대가로 한신건영의 경영권을 되찾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으므로 허위나 과정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해, ‘한명숙-검찰 간 악연’의 여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