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야 자식에게 반강제적으로 가업(家業)을 떠맡기는 풍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만 해도 사업가는 사업체를, 의사는 병원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이 허다했다. 전문직의 경우 더욱 그러해서 고급 공무원, 법조인 등 집안 자녀들은 대학 진학 시 학과 선택에 관해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았다.
필자의 경우 예상치 않게, 그러나 운명처럼(?) 회계사란 직업을 갖고 30여 년 한 길을 걸었다. 자식 삼남매 중 공교롭게도 둘은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고, 막내는 고민 끝에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에 있다. 셋 중 그래도 하나는 회계사의 길을 선택한 것을 드러내고 좋아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막내의 생각에 내심 흐뭇하다.
그런데 어느 날 막내가 느닷없이 항의성(?) 전화를 했다. 신문기사에 회계사가 향후 20년 이내 사라질 직업이라고 났다는 것이 이유였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인 막내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꾐’으로 오판을 한 격이다. 대체 어떤 기사가 막내를 열 받게 하고, 필자의 직업을 폄하(?)했는지 찾아보니 옥스포드 마틴스쿨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발표한 한 편의 보고서가 화근이었다.
이름하여 ‘고용의 미래: 우리의 직업은 컴퓨터화에 얼마나 민감한가’라는 보고서는 “결국 로봇기술의 발전이 현재 직업의 절반을 사라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외신은 물론 국내 언론에서도 화젯거리로 다루고 있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회계사의 직업 소멸 위험도는 94%에 이른다. 99%로 1위를 차지한 텔레마케터들과 더불어 ‘고위험군’에 속한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인간과 가축의 물리적 노동력을 대체했던 1차 로봇 혁명에 이어 지능을 대체할 2차 로봇혁명이 임박했다”고 했다. 생각해 보라. 지난 30여 년간 타이피스트, 티켓 판매원 등 적지 않은 직종을 로봇이나 기계가 대체했다. 무인자동차 상용화를 앞둔 지금, 운전기사(chauffeur)란 직업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진 않을지. 전문가들은 미래에도 존속할 직업은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레크레이션 치료전문가, 성직자, 큐레이터, 인테리어 등 인간만이 가진 감성과 창의성, 판단력 등이 바탕이 되는 전문직들이다.
일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에서는 ‘베이맥스(baymax)’라는 건강도우미 로봇이 등장한다. 고객의 건강 체크는 물론 눈빛을 보고 감정까지 읽어 코칭해 주는 힐링 로봇으로 우리나라나 일본에 증가하고 있는 독거노인에게 참으로 유용한 로봇이란 생각을 하던 와중에 ‘아차!’ 싶었다. 베이맥스가 요양사, 영양관리사의 직업적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즈음엔 LA 타임즈 로봇이 쓴 지진 속보기사가 세간의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진 발생 1분 여 만에 로봇이 완성했다는 기사는 사람이 쓴 것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문장 솜씨를 뽐냈다고 한다. 기자 로봇은 발로 뛰는 ‘기자정신’을 무색하게 하고, 일본 스시 체인점 구라스시의 스시 로봇은 스시맨의 몸값을 위협할 기세다.
로봇기술이 가공할 만한 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오직 사람만이, 사람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분야는 점차 규정짓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직업인 회계사의 미래는 어떤가? ‘자본주의의 파수군’이란 직업적 소명은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변함 없을 것을 확신한다. 시쳇말로 ‘장부’의 대차대조와 손익을 분석하는 것까지는 로봇에게 맡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회계사는 재무제표를 ‘기계적’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회계감사 현장에서 경영진과 지배기구의 정직성과 성실성에 대한 전문가적 의구심, 날로 변화하는 경영환경과 새로운 거래에 관한 전문가적인 해석과 판단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의사결정 또한 회계사 업무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러한 과정을 과연 로봇이 대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치적 분석을 뛰어넘는 인간의 인사이트와 판단력은 로봇이 정복할 수 없는 ‘성역(聖域)’이다. 석학들의 미래에 대한 예측과 예견 역시 로봇이 대신할 날도 머지 않은 것은 아닐까.
김종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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