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ㆍ이세진 기자]#. “새벽 1시가 넘었는데 잠이 안온다. 이사온지 2주가 다 돼가지만 아직 동네가 낯설다. 갑자기 옆집 TV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밖에 나가 소리를 줄이라고 욕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 내 말을 무시하는건가. 안되겠다 혼 좀 내줘야지. 담을 넘자.”(지난달 24일 서울 강북구에서 발생된 TV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이웃 주민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을 피의자의 관점에서 심경을 가상으로 재연한 것) 예부터 형제와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사람들을 ‘이웃사촌’이라 불렀다. 하지만 요즘 이웃 개념은 사촌의 사 자를 ‘죽을 사(死)’로 바꿔도 무방하다 싶을 정도로 심각한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웃간 시비 끝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위협이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는 분석 속에 주민간 갈등을 중재하고 해소하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생활소음’도 못 참는 이웃들=이웃간 갈등의 소재는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과거엔 비교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소한 문제까지 이웃간 범죄의 요인이 되고 있다.
층간소음, 주차, 흡연, 반려동물, 관리비, 쓰레기 문제에 더해 이젠 생활소음까지 갈등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2014년 8월 부산에서도 출입문 여닫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흉기를 들고 이웃집에 침입해 다치게 한 50대 남성이 붙잡힌 바 있다.
층간소음은 여전히 단골메뉴다. 지난 1일 부산에서도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는 이웃집에 1회용 라이터 불로 불을 지르려 한 20대 남성이 검거됐고, 지난달 서울 동작구의 한 빌라에선 반상회 도중 층간소음으로 감정이 좋지 않던 아래층 이웃을 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웃살인 매년 50~60건=이웃간 살인 범죄는 매해 50~60건 정도 발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되는 살인 사건의 5%가 넘는 비중이다.
살인을 포함한 총 이웃간 범죄는 매년 2만건 이상씩 일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된 살인 사건 중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관계가 이웃인 것은 50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웃간 살인은 2010년과 2011년 각각 64건, 65건씩을 기록한 후 2012년 49건으로 주춤했지만 이후 2013년 다시 51건을 기록하면서 반등했고 작년에도 비슷한 수준을 기록하면서 지난 5년간 50~60건 사이의 빈도로 발생되고 있다.
작년 전국에서 발생된 전체 살인사건이 907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살인범 100명 중 5명 이상이 우리 주변의 이웃이었던 셈이다.
이웃간 전체 범죄는 매해 2만건 이상이 발생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2만652건이 일어났고 2012년과 2013년 각각 2만2200건, 2만1건씩을 기록했고 2014년에도 2만건 이상이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살인이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 정도 된다.
살인 외 강력범죄도 이웃간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강간·강제추행은 매해 400~500건 정도 발생되고 있고, 방화와 강도도 각각 70~90건, 20~50건씩 일어나고 있다.
이웃간 범죄 중 가장 많은 종류는 상해와 폭행이다. 2013년 현재 이웃간 상해와 폭행은 각각 4515건(전체의 22.5%), 3637건(18.1%)씩 발생했다.
이웃의 이득을 편취하는 사기범죄도 적지 않다. 매해 1000건을 넘고 있고 2013년에는 1001건이 기록됐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웃간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안되는 행동들을 하는데, 대부분 일시적인 충동이나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걸쳐서 쌓여있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라며 “특히 성질이 욱하는 사람들이 사고를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설 교수는 “전통사회에서 공동체라 하면 1차집단인 커뮤니티가 포함됐는데, 현대사회 특히 도시에선 이웃사람은 공동체의 멤버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의미가 애매하다”며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저 사람이 나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판단되면 격한 반응이 오가고 야수와 같은 본능이 발동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997년 IMF 외환위기에서부터 공동체의 풍속이 깨지고 적자생존의 의식이 자라난 사회가 됐다”며 “그후 20년 가까이 자기 살기 급급한 문화가 이어지다 보니까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갈등관리 후진국’=통계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하위권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의 ‘사회갈등관리지수’는 OECD 34개 중 27위를 차지했다. 사회갈등관리지수는 정부의 행정이나 제도가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지를 나타내는 지수다.
이 지수가 높은 국가는 덴마크(0.923), 스웨덴(0.866), 핀란드(0.859), 네덜란드(0.846) 등 북유럽 국가들이었다. 한국은 0.380으로 체코(0.429), 슬로베니아(0.408), 포르투갈(0.406)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영국(0.677), 프랑스(0.616), 일본(0.569), 미국(0.546)보다 낮았다.
사회에 어떤 갈등 요인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갈등요인지수’는 조사 대상 국가인 OECD 24개국 중 칠레, 이스라엘, 터키에 이어 4번째로 높았다.
▶‘이웃분쟁센터’ 마련 시급=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엔 이웃간 갈등을 중재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YMCA 이웃분쟁조정센터의 주건일 팀장은 “싱가포르는 법체계에 따라 주민분쟁센터가 운영되고 있고, 미국은 총 400여개의 네이버후드 저스티스 센터(neighborhood justice center·이웃정의센터)가 있는데 우리나라엔 이런 제도가 없다“며 “우리도 센터를 방문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게 됨으로써 어떤 잠재적 두려움이 있는지 듣고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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