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한국과 일본이 ‘강제징용 사실 반영’을 골자로 하는 문안을 놓고 일부 의견접근을 이뤘다. 하지만 여전히 양측이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어 추후 협상에서 어느 쪽 의견에 더 힘이 실릴지는 미지수다. 최종 등재 여부가 결정되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WHC)까지 20여일 남은 상태에서 각자가 든 무기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쪽이 최후에 웃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ㆍ일은 지난 9일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근대산업 시설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된 2차협의에 나섰다. 우리 측은 지난달 22일 첫 협의 후 작성한 문안을 토대로 일본과 의견을 교환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3차협의를 기약했다.

한국이 제시한 문안에는 강제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라는 우리 측의 요구와 함께 정해진 기한까지 이를 실행할 방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앞서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에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하고, 조치 시한을 2017년 12월 1일까지로 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 협의에서 일본이 ICOMOS의 권고를 존중한다는 견해를 밝혀 일각에서는 타협 가능성이 커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으나 추가 논의가 남은 만큼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한 외교 소식통은 “우리는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고 말했다.

다만 양국이 가진 무기를 어떻게 휘두르느냐에 따라 이어질 3차 협의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상대로 한 외교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일본은 유네스코(UNESCO)라는 창(槍)으로 한국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일본은 1999년 말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배출했고, 한국의 5배에 이르는 의무분담금과 4배가 넘는 자발적 기여금을 내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 실패 시 유네스코를 탈퇴하겠다’,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나라를 홀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위원국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본 없는’ 유네스코의 현실화를 두려워하는 국제 사회가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 되고 있다.

반면 이에 맞서는 한국의 방패(防牌)는 명분이다. 한국은 과거사 문제에 있어 일본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이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데 한국이 정당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국제 사회의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과거 국권 상실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베트남, 세네갈 등은 최근 공개적으로 한국을 지지하고 나섰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은 “역사적으로 나타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며 “일본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한국의 제안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 소장은 “다만 일본에게 좀 더 성의 있는 교섭을 요구하려면 감정보다는 합리성 위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계속적으로 우리 측 명분에 대한 WHC 위원국 다수의 공감을 얻는 일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일본과 빠른 시간 내 협상을 마치고, 그 내용을 일본에게 실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국제 여론이라는 추동력도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오는 12일 위원회 의장국을 맡은 독일을 찾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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