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남한 정국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최근 우리 정부에 검역 장비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북한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국경을 봉쇄하고 외국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등 ‘방역 소동’을 벌였다. 그에 반해 메르스 사태의 경우 남한에서의 첫 발병이 난 지 보름이 지났음에도 북한은 다소 관망세를 보이고 있어 그 배경과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4일 통일부 당국자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의 메르스 환자 발생에 관심을 보이며 개성공단 출입 인원의 감염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열 감지 카메라 등 검역 장비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북측 당국이 개성공단 기업들에게 북한 근로자를 위한 마스크를 준비하라고 요구한 사실도 전해졌다. 이는 메르스에 대한 북한 측의 우려가 반영된 조치이기는 하지만, 과거 에볼라 파동과 비교해보면 강도 높은 대응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은 2014년 10월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에 휩싸였다. 그 증거는 당시 북한이 취했던 조치들에서 드러났다.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은 예외 없이 격리됐다. 당시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같은 북한 최고실세도 외국을 다녀온 후에는 에볼라 최장 잠복기인 21일 동안 격리 생활을 면치 못했다.
에볼라 차단을 목적으로 한 북한의 태도는 더 단호해졌다. 북한은 막대한 외화수입을 포기하고 외국인 여행객들의 입국을 금지했다. 올해 2월에 있었던 평양 국제마라톤대회에 외국인 출전을 일체 금지했다.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던 대규모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은 물론 8월 예정이었던 국제 태권도 행사도 취소했다.
북한 내부에서 에볼라에 대한 위기의식이 두드러졌던 것은 북한이 에볼라 전염을 정권 존립과 직결된 문제로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취약한 의료체계와 주민들의 열악한 영양 상태를 고려하면 북한 내의 전염병 확산 속도는 타국에 비해 훨씬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전염병을 막지 못해 주민 불만이 고조되면 그 원망은 고스란히 김정은 정권에 돌아간다는 해석이다.
동시에 북한은 에볼라가 미국의 공작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당시 노동신문을 통해 에볼라는 미국이 생물무기용으로 개발한 것이며 아프리카에서 시험한 게 분명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과거 에볼라 사태와 현 메르스 파동에서 태도 차이를 보이는 것과 관련해 아직 북한이 메르스의 전파 속도나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해 지켜보는 단계인 것으로 보고 있다. 메르스가 에볼라만큼 치사율이 높거나 확산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점도 지적 대상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재 북한은 남측이 메르스 확장에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을지 우려를 갖고 지켜보면서, 당장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메르스 쇼크가 장기화될 경우 남북 의료보건 교류 등으로 남북접촉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올해 3월 국내 대북지원 단체를 통해 에볼라 바이러스 진단 장비를 요청하기도 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국내 진입을 두려워해 중국과 일본의 대북 지원조차 마다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북한의 요청은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메르스의 경우 따로 치료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방 조치와 관련해 대북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메르스가 북한에서 발생할 경우 공동 대응이나 인도적 차원의 협력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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