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자산 굴릴 전문인력 확충나선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그의 인생 그리고 공단의 미래
“고래를 연못에 가둬둘 수는 없습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휘젓고 다닐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작은 연못에서 큰 고래를 키우면 연못에게도, 고래에게도 불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광(67)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을 고래에, 국내 자본 시장을 연못에 비유했다. 자산이 430조원으로 불었으니, 딱 제격인 비유로 들렸다. 그는 이어 ‘국민의 노후 보장자산’인 국민연금을 잘 지키고 증식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뒤 “수익률 제고를 위해 지금보다 해외 시장으로 더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이사장은 또 “이를 위해 우수한 인력과 정보가 필요하다”며 “중장기적으로 자산 운용 전문가 인력을 현재보다 2배 규모로 증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이사장은 경제학자적 양심과 진지한 연구를 최고 덕목으로 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그는 한눈에 전문경영인보다는 인품 있는 학자, 노련미 넘치는 경제통으로 읽힌다. 아마도 인생의 반 가까이를 강단에서 보냈고, 40대 후반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국가의 부름이 있을 때마다 국정의 중책을 맡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서울 잠실동에 위치한 국민연금 본사에서 최 이사장을 만나 그가 걸어왔던 인생과 국민연금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꿈 많았던 남해의 수재
경남 남해 다정리(茶丁里)라는 작은 마을, 교육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호인 ‘다정’은 고향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은 녹차가 많이 자라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에게서 강렬한 커피 향보다 은은한 녹차 향이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일지 모른다. 초ㆍ중학교 시절 거의 1등을 놓친 적 없는 그는 진주중학교를 나와 부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으며 졸업 후엔 한국개발금융(한국투자금융의 전신)에서 은행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계속할 뜻은 없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포드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위스콘신대로 유학길을 떠난다.
잊지 못할 은사 올슨을 만나다
최 이사장은 위스콘신대에서 메릴랜드대로 옮겨 경제학을 공부했고, 이때 평생의 은사(恩師)라 할 수 있는 맨슈어 올슨(Mancur Olsonㆍ1932~1998) 교수를 만나 재정학에 심취한다. 올슨 교수는 최 이사장이 평생 부친 다음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올슨 교수는 집단행동을 새로운 연구 분야로 개척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 수상 유력 후보에 올랐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미국의 경제학자다. 정치ㆍ사회ㆍ경제를 이해하고 번영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려면 이익집단의 연구가 필수적이라며 평생을 집단행동 연구에 몰두했다. 올슨 교수는 경제학보다는 정치학ㆍ정책학ㆍ사회학 분야에서 더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식견이 탁월한 인물이었다고 최 이사장은 회고했다. 올슨 교수 밑에서 조교생활을 하던 시절의 일화도 들려줬다. 그는 “수행해야 할 연구과제가 너무 많아 힘들다고 했어요. 시간도 부족하다면서요. 그랬더니 올슨 교수가 대뜸 한소리하더군요. ‘Cut your sleeping hours(잠자는 시간을 줄여라)’라고요. 그분은 온화하고 인간적인 매력에 더해 참 근면한 학자였습니다.”최 이사장은‘국가의 흥망성쇠’등 올슨 교수가 저술한 책 3권 모두를 번역해 한국에 소개했다. 책 3권의 번역자가 동일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그가 유일했다. 그는 이후 와이오밍대로 옮겨 교편을 잡았다. 그의 집무실과 자택 서재에는 온화한 미소로 책장 앞에 앉아 있는 올슨 교수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학자의 길에서 국가의 부름을 받다 미국 대학의 강단에서 수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귀국을 결심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으로 3년여간 일했다. 그리고 평생 직장이 돼버린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하지만 교수로만 만족할 수 없는 팔자였다. 오지랖이 넓었던 것은 아닌데, 주위에서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미 조세와 재정전문가로 통했던 때문이다. 국가는 그의 경험과 식견을 원했다. 최 이사장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한국조세연구원장, 복지부 장관, 초대 국회 예산정책처장 등에 봉직했다. 한국조세연구원장으로 있던 1997년 8월 어느 토요일을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원장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어요. 각하께서 곧 전화를 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지요. 그리고 잠시 뒤 전화가 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대뜸‘보건복지하세요’라고 하시더군요. 당황한 제가 그래서 되물었지요.‘보건복지를 하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라고요. 그랬더니‘장관하라고요. 보건복지도 몰라요?’하시지 뭡니까.”
그때가 그의 나이 49세였다. 장관 수행 기간은 짧았다. 불과 8개월이었다. 하지만 그는 굵게 일했다. 이 기간에 그는 약학대 6년제 학제 개편, 일반 의약품 약국 외 판매 허용 등의 정책을 실행했다. 최 이사장은 이후 초대 국회 예산정책처장도 맡게 된다. 그러는 사이 정치권에 미련이 생겨 국회의원선거에도 나가봤지만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학자의 길이 운명이라고 느낀 건 그때다. 학교로 돌아간 그는 후학 양성과 저술에 집중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외유내강이길 바라는 책벌레 그는 항상 웃고 다니는 스마일맨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내면에서 진지한 고민을 할 때라도 겉은 웃는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한다.“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연구원 생활을 할 때도, 장관직을 수행할 때도 항상 즐겁게 일하려 했습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일이 참 즐겁습니다.”그는 사실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쉴 때 연구를 했고, 그 결과 연구가 다른 일거리를 연결시켜 줬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뒤 단 한 번도 허투루 시간을 낭비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쉴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부인 조순희 씨는 남편에 대해“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단 한 가지 남편이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연평균 60여권의 책을 독파한다. 지난 15년간 읽은 책만 900권이 넘는다. 주제는 다양하다. 사회과학 서적을 비롯해 역사ㆍ철학ㆍ과학 등이다.
화려한 이력… 이제 쉬어야 하지 않나?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최광의 삶과 생각 부국안민의 길’(21세기북스)이라는 책에서 최 이사장에 대해“정년(精年)이라면 모를까. 정년(停年)이란 말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67세인 현재도 국민연금의 최고 수장으로 역할하는 그를 부러워하는 말이다.
그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임기를 마치면 꼭 해야 할 몇 가지 일이 있다고 했다.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게 그중 하나다.“살아생전 아버님은 5개국어 정도는 익히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분부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을 제대로 뵙기 위해서라도 꼭 5개국어를 해야 합니다. 아직 4개국어밖에 못하거든요.”
미국 유학생활을 통해 영어는 마스터했고, 독일어와 일본어도 틈틈이 익혀 웬만한 회화는 통할 정도가 됐다. 그렇지만 중국어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중국어만 마스터하면 우리말과 합쳐 정확히 5개국어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우스개처럼 얘기한다. 최 이사장은 또 대한민국에 일본의‘마쓰시다정경숙(松下政經塾)’과 같은 인재 양성기관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 마쓰시다정경숙은 일본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이끄는 리더 30여명을 배출한 기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을 나온 리더들이 사회 곳곳을 개혁해 더 발전된 일본을 만들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기업의 기부를 받아 한국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것 역시 소중한 꿈입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넓은 바다서 유영하는 고래가 되게 하겠다 최 이사장은 국민연금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졌다. 과거 스토리를 얘기할 때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해외 시장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를 위해서 고급 인력들을 국내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뉴욕과 런던 등에 있는 현재 국민연금 사무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현지에서 채권ㆍ주식 등 유가증권에 직접 투자를 결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사무소 규모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이사장은 “고래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휘젓고 다닐 수 있게 돕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라며 힘줘 말했다.
허연회 기자/okidoki@heraldcorp.com
최광 이사장이 걸어온 길… ▶1947년 경남 남해 출생
▶1962~1966년 부산고등학교
▶1966~1970년 서울대 상대(경영학과)
▶1985~2013년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1995~1997년 한국조세연구원장
▶1997~1998년 보건복지부 장관
▶2003~2004년 국회 예산정책처장
▶2013년 5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