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정신과 상담을 받은 A(55ㆍ여) 씨. 몇달 전부터 쉽게 피곤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걱정거리가 많아지더니 이제는 밤에 잠을 설치는 일이 잦아졌다. 이유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기운이 없어 만사가 귀찮아졌다. 중년이라 건강에 이상이 생겼나 싶어 동네 내과에서 검진을 받아 보았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지인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나이 드니까 그런다”, “이제 할 일 다 했으니 후련하게 떨쳐 버리고 너를 위해 즐기라”며 운동이나 식도락, 취미 활동을 권유한다.
그러나 도무지 의욕도 기운도 없다. 식욕도 떨어져 맛있는 것도 없고 소화도 잘 안된다. 최근에는 집중력도 떨어지고 건망증도 심해져 ‘내가 이렇게 늙어 버렸나’ 하는 생각에 허무해서 자꾸 눈물만 날 뿐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닌 신체의 문제=인생 주기상 40대에서 50대는 폐경, 배우자나 본인의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 질병, 자녀들의 출가 등 여러 가지 삶의 변화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다.
과거에는 갱년기 우울증의 원인을 ‘상실감’ 등의 사회 심리적 원인으로 설명하면서 취미나 종교, 운동 등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갱년기 우울증은 일시적으로 슬프고 우울한 기분이 드는 상태와는 다르다.
폐경을 전후해 여성 호르몬 수치가 급격하게 하락하며, 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활성화시키는 등 내분비계의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는 뇌의 신경세포군을 기능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과 같은 뇌 기능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더 쉽게 생기게 돼 갱년기에 우울증이 더 발생한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홍진 교수는 “신체에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질병처럼, 중년기에 생기는 여성호르몬과 뇌기능의 변화가 갱년기 우울증 발현에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들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적절한 치료로 완치 가능=갱년기 우울 증상은 항우울제의 약물요법으로 쉽게 완치가 된다.
요즘 사용되는 정신과 약물은 부작용이 별로 없고, 완치된 후에는 약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약물 의존에 대한 걱정 없이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약물을 복용한지 일주일 안에 우울증과 관련된 증상이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해 3-4주가 지나면 증상이 많이 호전된다.
약물을 복용하기 어렵거나, 약물 치료로 반응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반복적 경두개 자기 자극술 등의 비약물적 치료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비약물적 치료법도 효과가 좋은 편이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심리 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중년기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주고, 관점을 달리 보게 해 주므로 가벼운 우울증의 경우에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주변인, 특히 남편들이 아내의 심리 변화와 그 상황에 대해 주목하고 배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강남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과 김은주 교수는 “자신이나 혹은 주변의 사람들이 우울증 증상을 보일 경우에는 막연히 의지가 약해서 우울증상이 생긴다는 등의 충고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울증상이 2주 이상 심하게 지속될 경우에는 의사에게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도록 주변에서 도와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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