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한 젊은 여인이 남성의 손을 잡고 수줍은 듯 웃고 있습니다. 사진은 분명 여인의 손을 잡은 맞은편의 남성이 찍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진은 그것이 착시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인은 남성의 팔과 손 모양으로 된 ‘셀카봉’(selfie stick)에 스마트폰을 매달아 자신의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섬유유리 전문 아티스트인 저스틴 크로와 어릭 스니가 함께 디자인한 작품입니다. ‘셀피암’(Selfie Arm)이라는 이름이 달렸습니다. 작가들은 “우리의 공동작업은 점점 더 늘어나는 셀카봉 현상과 자기도취적인 인터넷 인증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논평(commentary)”이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습니다. 홈페이지엔 이런 설명도 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셀카를 찍을 때 누구도 혼자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 제품은 아주 쉽게 당신을 환영하는 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셀피암이 더욱 훌륭한 것은 말도 하지 않고 감정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당신은 가상의 계정을 만들고 셀피암의 손가락을 이용해 당신의 모든 사진에 대해 ‘좋아요’라고 터치(클릭)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 셀피암의 손가락이 한 것일 뿐이죠. ”
마지막 말은 그러니 자신이 스스로의 사진을 찍어 올리고, 자신이 ‘좋아요’를 더한 것에 대한 자괴감은 갖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개발중인 시제품’이라고 밝혔으니 ‘셀피암’이 작품으로 나온 건지 정말로 상업적 용도로 제작된 것인지는 아직 알수는 없지만, ‘셀카와 셀카봉의 시대’에 대한 아주 적절하고 신랄한 상징으로 보입니다.
▶연결될수록 외로워진다
셀피암으로 스스로를 촬영하는 사진 속 여성은 아마도 연인이 없는 ‘솔로’일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SNS활동은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겠지요. 좋은 풍경, 재밌는 장면, 맛있는 음식 사진을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는 사용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솔로’로는 보이고 싶어하지 않겠죠. 외로우나 외롭게 보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여성,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같은 욕망의 충돌을 경험합니다. SNS를 통해서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결되고 싶어합니다. 관계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온라인을 벗어나 실재에서 관계를 맺는 일은 끊임없이 주저합니다. 관계가 주는 부담감, 다가올 감정의 혼돈 앞에서 멈칫거립니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연결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집니다. 온라인에서의 관계, SNS의 업데이트와 ‘좋아요’에 집착합니다.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어쩌면 현실에서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자양분으로 할지도 모릅니다.
▶보여줄수록 감추게된다, 감출수록 보여주고 싶다
보여주고 싶을수록 감추는 게 많아지고 감출수록 보여주고 싶은 것도 우리의 내부에서 충돌합니다. 사진 속 여인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만, 솔로인 것은 감추고 싶습니다. ‘실재의 나’와 꾸미고 포장한 ‘가상의 나’가 서로를 속이고 유혹합니다. ‘가상의 나’는 현실의 나를 재료로 구성되고, ‘실재의 나’는 ‘가상의 나’를 점점 더 그럴듯하게 받아들입니다. 감춤과 드러냄은‘자기애’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들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선택된 취향과 이미지를 재료로 ‘가상의 나’를 만들어내고, ‘가상의 나’를 실재로 받아들임으로써 자기만족을 극대화합니다. 픽셀 단위로 재현된 자신의 이미지와 그 밑에 달린 ‘좋아요’로 자신의 존재감을,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합니다. ‘셀카’와 ‘셀카봉’은 자기애를 구현하는 아주 탁월한 미디어와 도구입니다.
▶‘그녀’, 사랑할 수 있을까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2013년 영화 ‘그녀’(Her)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와 스칼렛 요한슨의 나른한 듯 관능적인 목소리가, 놀라운 시나리오를 더욱 압도적인 영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죠. 지독한 외로움 속으로 장난스러운 농담이 파고들고, 차디차고 딱딱한 디지털 세계의 속살에 감춰진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성을 펼쳐내 보입니다. 여인의 육체없이 관능적이고, 디지털만으로 인간의 온기를 자아내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연결될수록 고독하고, 갈망할수록 달아나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관계와 사랑, 자아의 본질을 통렬하지만 감성적으로 보여주는 러브 스토리였습니다. 여인의 목소리로 구현된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말하자면, IOS의 ‘시리’와 사랑에 빠진 남자라고 할까요.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의 역설을 빼어나게 담았습니다.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는 다른 사람들의 의뢰를 받고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는, 기업 ‘아름다운 손편지닷컴’의 직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아내와 별거 및 이혼 소송 중으로 지독한 외로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일을 마치면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3D게임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 채팅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던 중 그의 컴퓨터에 채용된 새로운 개인 맞춤형 인공지능 운영체제가 인간의 육성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이 운영체제는 스스로 학습(진화)하는 인공지능인데, 요샛말로 하자면 ‘딥러닝’ 기술이 적용된 것입니다. 주인공이 운영체제의 성별을 ‘여성’으로 지정하자, 자신의 이름을 ‘사만다’(목소리 스칼렛 요한슨 분)라고 소개한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컴퓨터의 모든 기능을 수행함은 물론이고, 테오도르와 모든 일상과 모든 희로애락을 나눕니다. 옛 아내와 그랬듯이 자꾸 다른 이들로부터 튕겨져 나오기만 했던, 관계맺기를 그토록 힘들어하던 그에게 사만다의 목소리는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됩니다. 그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집니다.
▶또 한 장의 사진, 독백하는 사랑
영화 장면 중에는 테오도르가 운영체제가 담긴 소형 컴퓨터, 아마도 지금의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를 셔츠의 윗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웃음이 환합니다. 요새야 길거리를 다니며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이들이 많아 이상하지 않지만, 몇 년전만 해도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혼자 울고 웃고 하니 말입니다.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은 뭔가 ‘셀피암으로 사진찍는 여성’과 닮아 있습니다. 셀피암의 끝에는 남자친구가 아닌 스마트폰이 끼워져 있고, ‘그녀’에서 주인공이 소형 컴퓨터로 보내는 메시지의 끝에는 아주 차가운 칩만이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뭔가 처절한 느낌도 납니다. 관계를 맺고자 하는 소망은 그만큼 간절한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디지털이 열어 놓은 삶의 가능성이 무한해질수록 정작 자신이 발들여 놓은 세계는 폐쇄돼가고, 자신을 대리하는 디지털 분신(아바타)이 많아질수록 자아를 잃어가게 되며, SNS로 표현되는 디지털 그물망이 촘촘해질수록 진실한 관계는 점점 불가능해지는 현대인의 역설을 연민과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셀카를 찍을 때마다, 셀카봉을 볼 때마다, SNS의 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는 어떤 애처러움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