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38시간의 기차여행이 끝난다. 만일 미키와 기차 위아래칸을 쓰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주인공이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는 동화속 요정처럼 여행길이 외롭고 힘들 때 등장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나도 그런 존재였을까?

첸나이가 가까워 오자 8시간을 더 흔들려야하는 미키는 “노프라블럼”이라며 인도사람 흉내를 낸다. 2박2일(!)을 같은 공간에서 지냈더니 몹시 가깝게 느껴진다. 작별인사 하는 그의 사진을 찍는다. 역시 그도 페이스북에 올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이제 세상은 끊어질 수 없는 망으로 연결되었다. 지구촌 어디에 있어도 페이스북이든 이메일이든 지속적으로 연락 가능한 스마트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한다. 남은 여행 잘하라고 서로의 등을 두드린다. 이틀 새 수염이 더 자라난 미키가 말갛게 웃으며 안녕을 고한다. 또다시 이별이다.

미키를 태운 기차는 벵갈루루를 향해 멀어져가고 나는 첸나이역에 발을 내딛는다. 훅하고 더운 바람이 불어온다. 바라나시에서 여기는 거리가 멀다. 바라나시는 네팔 국경 쪽의 북쪽 도시이고 첸나이는 인도 남부의 대표적인 중심도시다. 북인도에선 추웠는데 긴팔 옷과 패딩은 당분간 꺼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낮이라 더위가 더하다. 2박3일 씻지도 못한데다가 날씨까지 더워서 땀이 나니까 몸은 더 꼬질꼬질해진다. 노숙자가 따로 없다. 빨리 숙소를 찾아 샤워하고 싶다.

역의 프리페이드 오토릭샤 부스에서 첸나이 에그모어 역으로 가는 오토릭샤를 탄다. 여기 첸나이는 대도시라 그런지 무척 번화하고 혼잡하다. 대도시의 북적거림이 싫다. 오늘 날짜로 예약해둔 찬드라파크 호텔을 찾아 간다. 여행 오기 전 인터넷 까페에서 알게 되어 남인도 여행을 함께 하게 된 동행도 이곳으로 올 것이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여기까지 38시간 걸리고 그녀는 한국에서 싱가포르 공항 경유해서 노숙하고 첸나이로 입국하는 일정이라 누가 먼저 호텔에 들어올지는 모른다. 첫 만남인데 둘 다 노숙자 모드로 만날 판이다.

서로 잘 찾을 수 있도록 눈에 띄는 좋은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무사히 찾아 호텔로 간다. 이만하면 으리으리하다. 이번 여행 통틀어 이 호텔이 가장 좋은 숙소이긴 하다. 이틀 전 바라나시 호텔은 여기 비하니 초라하다. 리셉션에서 예약을 확인한다. 이미 그녀가 먼저 와서 체크인해 있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지만 반갑다. 얼른 4층으로 올라간다. 카톡과 이메일 만으로만 만났던 그녀가 나를 반긴다. 이제 그녀와 나는 같은 열차에 탑승했다. 여행이 좋아 만난 우리는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을까?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마치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시나리오 같다. 설레고 긴장되면서도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다. 그런 시간이 흘러간다. 알고보면 이 영화의 제작자는 바로 나인데 말이다. 기차의 흔들림이 끝났다. 당분간 한국인 동행과 외롭지 않은 날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두 발이 땅을 딛고 서서 머무른다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 기차의 밤들이 아득히 지나가고 이런 한국스러운 인도 호텔에서 사치를 부리고 있어도 내일은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고 있을 것이다. 더러워진 몸을 씻고 이틀간 기차에서 찌든 빨래를 해서 창밖에 걸어놓는다. 더운 바람이 금방 빨래를 말려 줄 것이다.

남인도는 나도 동행도 처음이다. 짐을 풀어 빨래를 마치고 일단 식사부터 하러간다. 호텔이 첸나이 에그모어 역 주변이라 시장도 크고 식당도 좋은 곳이 많다. 저녁 장을 구경하면서 역 주위를 돌아다닌다. 노점의 붉은 바나나가 신기해서 사진을 찍는데 옆집아저씨가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리며 포즈를 취해준다. 사람들이 순수하게 보여 왠지 느낌이 좋다 .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음식 추천을 받는다. 친절한 점원이 도사(Dosa)라는 남인도식 음식을 권해준다. 맛도 좋다. 확실히 북인도와는 다르다. 북인도는 밀가루가 주식이라 짜파티나 난을 먹는데 비해 남인도에선 쌀이 주식이라 저렇게 쌀로 만든 도사를 먹는다. 그냥 접어놓아도 되는데 저렇게 원뿔처럼 말아 세워 놓은 비주얼이 특이하다.

인터넷으로 만나 카톡으로 친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처음 만나는 동행과 각자의 지난 여정을 이야기한다. 첸나이는 낯선 도시지만 여행을 즐기는 여자 둘이 만나서인지 이야기는 금방 수다가 된다.

호텔에 돌아와 다시 씻고 몸을 눕힌다. 처음 뉴델리에서는 여행이 실감나지 않았다. 떠난 지 보름이 지났고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 난 여행 속에 들어와 있다. 어제 한국을 떠나온 동행이 주는 팩을 얼굴에 얹어놓고 누워있는 이 밤이 어색하다. 사람이라는 존재, 마음의 실체를 생각해 본다. 폭신한 침대, 잘 돌아가는 에어컨, 조용한 방에서 금세 잠이 든다. 이 쾌적함을 언제 다시 맛볼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만큼은 상쾌하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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