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추상표현주의 회화의 거장 마크 로스코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러시아 출신 미국화가,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거장 마크 로스코(Mark Rothkoㆍ1903-1970)를 처음 알게 된 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의 컬렉션 무대를 통해서였습니다.

2007년 가을 질 샌더는 2008년 봄ㆍ여름 컬렉션 무대에서 파격적인 색 조합을 선보입니다. 분홍색 스키니 팬츠에 오렌지 색 재킷을 매치한 겁니다. 일상적으로 시도하지 않는 색 조합이죠. 이후 한동안 프라다와 마르니,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여러 컬렉션 무대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색 조합이 등장하게 됩니다. 오렌지에 핑크, 그린에 블루…. ‘컬러 블로킹(Color Blocking)’이라는 단어도 이때부터 자주 쓰이죠. 그리고 이러한 컬러 블로킹의 영감은 마크 로스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로스코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이때였습니다. 색면 추상의 대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순수미술 거장, 그 정도였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로스코를 잘 모릅니다. 지금 당장 로스코의 그림을 받아든다 해도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자칫 거꾸로 걸었다가 무식이 탄로나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인 그림이 바로 로스코의 그림입니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을 대거 볼 수 있는 전시회가 23일부터 100일동안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전시를 공동으로 주관하는 곳은 ‘코바나컨텐츠’라는 문화예술 기획사입니다. 2004년 프리랜서로 독립한 김범수 전 아나운서가 부사장으로 있는 곳입니다. 지난 2010~2011년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2013~2014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필립 할스만의 ‘점핑위드러브’전을 개최하기도 했죠.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굵직한 회화, 사진 전시를 잇달아 열고 있는 코바나컨텐츠에서 올해 야심차게 들고 나온 전시는 바로 ‘마크 로스코 전’입니다. 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로스코 작품 50여점을 들여오는데 보험 평가액만 2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습니다. 게다가 워싱턴 국립미술관은 소장품 해외 반출이 ‘몹시’ 까다로운데 이처럼 대규모 전시를 한국에서 여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들뜬 분위기입니다.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11일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대단한’ 전시를 “대단하다”고 홍보하는 기획사 측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철학박사 강신주였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강신주 박사는 전시가 열리기 1년여전부터 로스코에 대한 ‘연구’를 의뢰 받았다고 합니다. “가난한 집 출신이라 미술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라고 말한 강신주는 여전히 미술품은 부유층의 전유물, 탈세의 도구가 아니냐며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1년 내내 로스코 그림만 팠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써 전시 도록과 함께 그가 쓴 책이 나온다고 합니다.

철학박사의 말에 따르면 도대체 뭘 그렸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추상표현주의’ 회화라는 것과는 다르게, 로스코의 그림은 ‘소통표현주의’로 재해석돼야 할 예술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19세기 중반 카메라라는 매체가 발견되면서 회화가 위축되기 시작했고, 이후 화가들은 더 이상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을 작품에 녹여내는데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표현주의의 시작입니다. 예술을 통해 현실을 주관적으로 확장하는 겁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이 그림이 무엇을 그렸는지 구분 정도는 가능했지만, 추상표현주의에 와서는 도대체 뭘 그렸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 극한까지 갔던게 로스코고요. 전쟁과 살육, 가난 등 격동의 20세기를 겪으며 비극적 감정을 온 몸으로 체화했던 로스코는 자신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슬퍼하고 소통하고자 했습니다.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림 앞에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는 내 그림을 보여줄 수 없다”.

그렇기에, 강신주 박사는 로스코를 추상표현주의가 아닌 소통표현주의로 봐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림을 통해 감정을 표현(Expression)하고, 소통(Communication)하려고 했던 로스코는,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과는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이죠.

철학박사는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열변을 토합니다. 로스코 그림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림은 한편의 드라마구요. 이 네모(컬러 블록)들은 드라마 속 등장인물(Performer) 입니다. 색(色)과 색의 경계, 그 사이가 굉장히 많이 떨리는 게 보일 겁니다. 색이 서로의 색에 전염되고, 두 개의 색이 서로 사랑에 빠지고…. 그러면서 감정이 전달되는 거에요. 이 색은 근원적인 감정들을 얘기하고 있는 거구요. 색이라는 퍼포머들의 관계맺음을 통해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겁니다.”

강신주 박사는 말합니다. 로스코의 초창기 작품이라면 안 사겠다고 말이죠. 인문학을 전공하고 예일대를 중퇴했던 로스코의 데생 실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말합니다.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고요. 실제로 그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강신주쌤, 정말 그런가요? 지난해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 10주년 전시에서도 로스코의 그림이 있었는데요. 눈물은 나지 않았습니다. 쌤 눈에는 보이는데, 제 눈에는 왜 아직 그게 안 보이는 겁니까?

“표현과 소통의 경계에서 균형을 상실했기 때문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로스코, 그가 남긴 말을 전합니다.

“그림은 사람과 교감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며, 감상자에 의해 확장되고, 성장한다. 나는 추상미술가가 아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들의 관계에 아무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 등 인간의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대할 때 무너져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내가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경험한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