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건물임대차보호法 또 국회 표류 건물주 소급 우려 재계약않고 임차종료…임대인도 명도소송 제기 맞불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빌딩에서 철물점을 운영해 온 이모(55) 씨는 지난 2008년 큰 화재를 겪었다.

이 씨는 약 3억7000만 원 가량의 자비를 들여 가게를 복구했고, 2010년 월세였던 계약을 전세로 바꾸면서 “화재 수리비용을 계약서에 포함시켜달라”고 건물주에 요구했다.

당시 건물주는 “임대 세금이 많이 나간다”고 하소연하며 “상가를 비울 때 변제해주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2012년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이 씨의 고통이 시작됐다. 처음 호의적이었던 새 건물주는 이 씨가 화재 수리비를 언급하자 얼굴색을 바꿨다.

건물주는 “건물 주인이 바뀌면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한다”며 “4000만 원의 권리금을 줄테니 가게를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처음 투입한 돈에 비해 건물주가 제시한 금액이 터무니 없이 적은 데다 계약이 만료되려면 3년 가량 남은 상황인만큼 이 씨는 가게를 비울 수 없다고 맞섰다.

그러자 새 건물주는 “월세를 250만 원 내라”고 협박했다. 같은 해에는 명도(건물을 비워 넘겨줌)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이 씨의 손을 들어주자 각종 협박을 일삼기도 했다.

이 씨는 “건물주가 다른 임차인과 계약했다며 4월이 되면 계약 기간이 끝나면 가게를 비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전세금 1억 원 외에는 다른 돈을 보장받을 수 없어 새롭게 장사를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상가세입자들의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또 다시 국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임차인과 건물주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탤런트 길용우(60)씨가 서울 경리단 길에 건물을 매입한 후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하면서 국회에서 표류 중인 이 법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선의의 임대인을 구제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개정안 논의가 4월 임시국회로 미뤄진 가운데, 일부 건물주들이 개정안이 소급 적용될 것을 우려해 재건축 등을 핑계삼아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임차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개정안은 임대인이 계약이 끝난 후에도 2개월까지 임차인이 다음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하는 내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법 시행 당시 계약이 끝나지 않은 임차인들은 이 법을 소급 적용받는다.

현재 개정안 논의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공포’다.

임대인들은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돼있는 만큼 서둘러 임차계약을 종료해 권리금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수천 만 원 가량을 투자해 장사를 시작한 영세자영업자들은 “장사를 시작한 지 1,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본전도 뽑지 못한 채 거리로 나앉을 수 없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결국 임대인이 명도소송을 제기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법정공방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실제로 길용우 씨가 매입한 건물에서 수입식품점을 운영하는 임모(43) 사장은 “소상공인 대출 3000만 원을 받아 권리금을 내고 가게를 개업했고, 경리단길 상권이 좋아지면서 2년여 간 수천만 원을 투자해 건물을 꾸몄다”며 “이대로 쫓겨나면 빚만 남는다”며 막막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합법적 재산권을 행사하는 임대인들을 무턱대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일부 건물주들은 “임차인의 매출이 미미할 때 새로운 투자자가 생기면 가게를 넘기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5년 간 임차인 권리를 보장해주는만큼 무턱대고 임차인의 손을 들어주기도 어렵다”며 “선의의 임대인에게 상가마다 권리금 보상을 요구한다면 상가 공급물량이 줄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