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오늘 이 자리에 우리는 두식(이두식 교수)이를 추억하려고 모였습니다. 두식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했네요. 두식이와 우리는 1960년대말 이상벽 형(방송인, 홍익대 미대 출신)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모두 풋풋한 꿈을 펼치려던 시기였죠. 하지만 너무들 가난했죠. 그 때 두식이가 광화문에 작은 아틀리에를 냈습니다. 그 곳은 젊음의 아지트이자, 우리들의 아지트였죠. 거의 매일 화가, 가수, 배우, 방송인이 몰려들어 격의없이 어울린 곳이었습니다. 이상벽, 조영남, 김민기, 김세환, 그리고 나는 단골이었죠. 모두 가난했지만 우리의 듬직한 친구 두식이가 있었기에 따사한 정이 흘렀습니다”.
말쑥한 정장에 중절모를 쓴 가수 이장희(66) 씨가 비통한 심정으로 친구인 화가 이두식 교수(홍익대 회화과)의 영결식에서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날씨마저 잔뜩 흐린 25일 오전 10시반,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남(南)인사마당에서는 지난 23일 새벽 심장마비로 타계한 이두식 교수의 노제가 열렸다. 한국 추상화단을 대표하는 작가인 이두식은 홍익대 정년퇴임(28일)에 앞서 지난 22일 오후 5시 홍익대미술관(HOMA)에서 열린 퇴임기념전 ‘이두식의 표현·색·추상’ 개막식에 참석, 귀가했다가 잠든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연이은 행사와 전시준비로 과로한 것이 사인(死因)으로 알려졌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제17대 한국미술협회 고 이두식 이사장 영결식이 26일 오전 서울 인사동에서 열려 지인들이 헌화하고 있다. 이두식 이사장은 한국추상화단의 큰별로 지난 23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6세로 오는 28일 정년퇴임을 앞둔 고인은 정년 기념 전시회를 앞두고 밤샘작업을 하는 열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그는 후배들이 퇴임 기념으로 마련한 전시 개막식에서 “이젠 학교를 떠나 자유롭게 됐으니 마음 놓고 작업에 매진하겠다. 지금까지 4000여점을 그렸는데, 앞으로 3000점을 더 그릴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이사장 조강훈) 주관으로 치뤄진 이날 노제에는 미술계 인사는 물론, 각계 각층에서 약 300여명이 몰려들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고인을 추모했다.
가수 이장희 씨 외에도 가수 김세환, 방송인 이상벽, 소리꾼 장사익 씨가 참석했으며 이성림 예총 회장(국악인)이 자리를 함께 했다. 화단에서는 김태호, 노재순(미술협회 전 이사장), 유병훈, 이기전, 이인섭, 조일상(부산시립미술관 관장), 주태석, 지석철 씨가 참석했다. 또 이영만 ㈜헤럴드 대표이사 사장, 김영석 한국미술품시가감정협회 이사장, 김성옥 갤러리서림 대표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제17대 한국미술협회 고 이두식 이사장 영결식이 26일 오전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미술협회장으로 열리고 있다. 이두식 이사장은 한국추상화단의 큰별로 지난 23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6세로 오는 28일 정년퇴임을 앞둔 고인은 정년 기념 전시회를 앞두고 밤샘작업을 하는 열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이장희 씨는 “두식이랑 어울리다가 나는 1980년대초 미국으로 떠났죠. 소식이 십여년 넘게 끊겼어요. 그러던 어느날, 캘리포니아 L.A 남쪽의 라호야 지역을 지나다가 우연히 한 갤러리에서 이두식의 화려한 그림이 걸려 있는 걸 봤습니다. 멀리서도 그의 그림인줄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그만의 확연한 스타일이 있었으니까요. 우와! 우리 친구가 이제 세계적인 작가가 됐구나 하고 너무너무 반갑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급하게 갔습니다.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피멍을 만들어놓고 갔습니다”고 애통해 했다. 이어 “그래 두식아, 잘 가라. 나도 곧 가마. 너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 했던 친구 장희가.”라며 말을 맺었다.
방송인 이상벽 씨는 “밥벌이를 한다고 네가 21일 마련한 정년퇴임 저녁모임에 못간 게 두고두고 천추의 한이 되는구나. 세시봉 친구들은 모두 참석했는데 나만 빠졌지 뭐냐. “꼭 와줄 거지?”하며 내게 사회를 부탁했는데 알량한 밥벌이 때문에... 두식아, 그동안 너무 힘들고 바빴지? 그 커다란 덩치로 사방팔방 뛰어다녔던 네 모습이 정말 선하다. 4월에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일생일대의 전시를 한다며 조영남, 김민기에게도 꼭 한점씩 작품을 내야한다고 윽박지르더니 그렇게 속절없이 떠나는 건 뭐냐”라며 울먹였다. 이 씨는 “허나 어떻하겠는가. 이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정말이지 네가 있어 행복했네. 십년이나 못 만난 자네 아내 만나, 거기서 원없이 그림 그리려무나”라고 덧붙였다.
주태석 교수는 고인의 약력보고에서 “이두식 교수님은 서양의 색채추상 형식에 민족 고유의 정서와 미감를 담아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분이셨습니다. 추상화단의 큰 별이십니다. 또 작품 못지않게 뛰어난 인맥과 행정능력을 지니셨습니다. 미술계 최고 마당발이셨죠.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을 세차례 연임하시며 성공적으로 비엔날레를 치르셨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정년퇴임 기념전은 그만 유작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불꽃처럼 사시다가, 이렇게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고 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제17대 한국미술협회 고 이두식 이사장 영결식이 26일 오전 서울 인사동에서 열려 장사익씨가 추모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두식 이사장은 한국추상화단의 큰별로 지난 23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6세로 오는 28일 정년퇴임을 앞둔 고인은 정년 기념 전시회를 앞두고 밤샘작업을 하는 열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이어 조강훈 미협 이사장은 “그림과 사람, 그리고 술을 사랑하고 즐기셨던 분, 전염성 강한 에너지를 지니고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셨던 분, 주위 사람들에겐 온화했으나 작업 앞에선 더없이 냉혹하셨던 분, 작품의 제목처럼 축제같은 삶을 사셨던 분, 미술인들을 하나로 묶어주셨던 분. 그런 선생님을 알고,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그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고, 상실감이 태산같지만 이제 하늘에서 사모님 곁에서 편안하소서”라고 조사를 낭독했다.
한편 이날 노제에는 소리꾼 장사익 씨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로하며 노래를 불렀다. 장 씨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歸天)’에 곡을 붙인 노래 ‘귀천’을 불렀다. 그의 절절하면서도 애닲은 노래는 영결식에 참석한 이들은 물론, 인사동 거리를 지나는 이들까지 불러모아 잠시 고인의 명복을 빌게 했다.
장 씨는 마지막으로 ‘봄날은 간다’를 애절하게 부르며 문화의 거리, 미술의 거리 인사동을 멋진 버버리코트를 떨쳐입고 수없이 누볐던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진심으로 추모했다. 장 씨의 노래를 끝으로 운구행렬은 서울 마포의 홍익대로 향했다. 한국 미술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따뜻한 화가는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영영 떠나고 있었다.
yrlee@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제17대 한국미술협회 고 이두식 이사장 영결식이 26일 오전 서울 인사동에서 열려 가수 김세환씨와 지인들이 헌화하고 있다. 이두식 이사장은 한국추상화단의 큰별로 지난 23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6세로 오는 28일 정년퇴임을 앞둔 고인은 정년 기념 전시회를 앞두고 밤샘작업을 하는 열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