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살로 잃은 자식들…“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엄마 자살이 아빠 자살로…그리고 오빠의 자살로 이어진 최모 씨…그녀도 결국엔…

-자살로 이어지는 악의 굴레 벗어나야…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죽음으로써 끊으려 했던 자살자의 고통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되물림된다. 특히 아동ㆍ청소년기에 부모의 자살을 접한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흔들리게된다.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생각, 누군가 또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남겨진 자식들은 견디며 살아야 한다. 부모의 자살이 자식의 자살로 이어지는 끔찍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현선(17ㆍ여ㆍ가명) 양의 아버지는 지난 2007년 1월 경기도 광명의 한 여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증을 잘 못 서 큰 빚을 지게 된 후 아버지는 변해갔다. 술을 먹는 날이 잦아졌고 가족들에게 모진말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날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 문을 두드렸다. 화가난 어머니는 문을 걸어 잠궜고, 집에 들어오지 못한 아버지는 그로부터 2주 뒤 집 근처 여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2007년 1월 18일, 정 양은 아버지가 숨졌다는 소식을 경찰로 부터 전해들어야 했다. 정 양이 13살 때였다.

아버지의 자살 후, 정 양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어머니는 무너져 갔다. 정 양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다”는 넋두리를 정 양에게 쏟아냈다. 정 양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거나 휴대전화를 받지 않는 날이면 극도로 불안해진다. 아버지의 죽음 후 ‘어머니가 죽고싶다’는 말을 할 때면 나도 죽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죽음 후 이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뒤따랐다. 평소에 죽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하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바로 전날에도 정 양에게 ‘아빠 죽는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정 양은 “아버지가 평소에 ‘죽고 싶다’라는 말을 문자로 많이 보냈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문자를 보냈다. 평소처럼 하는 말이라 생각해 넘긴 것이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 양의 집은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졌다. 수입은 반으로 줄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정 양의 언니는 도서관 대신 분식집 아르바이트를 선택해야 했다. 어머니가 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하며 벌어온 돈은 두 자매를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언니가 올해 대학에 들어간 뒤 그 아르바이트는 고등학생인 정 양이 물려받았다.

부모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식들을 정신적ㆍ경제적으로 망가뜨리고 심지어 그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기도 한다. 대전에 사는 최정은(42ㆍ여ㆍ가명) 씨는 12살 때 어머니를, 17살 때 아버지와 생이별을 했다. 부모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전쟁 휴유증에게 시달리던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했다. 결국 최 씨의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탓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가 떠난 뒤 최 씨 아버지는 어머니의 자살이 본인 때문이라고 여겼고, 이후 폐인이 돼갔다. 어머니의 죽음이 있고 5년 뒤 아버지 역시 스스로 삶을 등졌다. 비극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년 뒤 최 씨의 오빠 역시 자살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생을 마감했다. 오빠를 친 운전자는 “오빠가 갑자기 차로 뛰어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나홀로 남은 최 씨. 그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으로 내몰려야 했다. 최 씨가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던 것은 물론이고, 부모에 대한 원망,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한탄, 그들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과 싸워야 했다. 최 씨 스스로에게도 두 번에 걸친 자살시도가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한 번, 결혼 후 남편의 사업실패로 또 한 번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외로움 또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최 씨는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사회에는 자살이 유전이 된다는 편견이 있다. 누구에게도 나의 고통을 이야기 하지 못하고 혼자 견뎌야 하는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은 “부모가 자살을 한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며 “ 부모의 자살을 경험한 자녀의 일부는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라는 생각에 부모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며 이런 생각들이 아이들의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역시 “아동들의 경우 부모가 아프기만해도 ‘나 때문에 아프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부모가 자살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그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