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술에 취한 걸까, 영화에 취한 걸까. 지난 22일 월요일 아침 서울 홍대앞의 한 카페. 인터뷰에 나선 이경규(53)는 “영화 ‘전국노래자랑’ 기술 시사를 마치고 스태프들과 어제도 두 시간쯤 마셨나”라면서 “영화 때문에라도 요샌 항상 취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규는 전날밤 마신 술로 눈이 좀 부어 있었다.

“방송을 하면서 긴장해 본 적은 없죠. 영화는 달라요. 관객수를 떠나서 시사회 끝내고 나오면 서로 눈빛을 보면 알잖아요. 잘 됐는지 안 됐는지. 그 때가 가장 긴장이 되요.”

이경규는 “코미디도 하고 영화도 하다가 성공리에 마치고 잘 떠났다”고 훗날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10편 정도 해서 그 중에 하나라도 정말 대중의 기억에 남겨진 작품이 있다면 영화인으로서 ‘성공’이 아닐까, 예를 들자면 최민식에게 ‘파이란’같은 대표작”이라고도 덧붙였다.

30년 개그맨 인생, 그리고 영화 ‘복수혈전’(감독) ‘복면달호’(제작)에 이은 ‘전국노래자랑’(제작)으로 3번째 ‘외도’. 이경규에게 개그, 방송, 그리고 영화란 무엇일까?

이경규<br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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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생계이고, 영화는 명예죠. 방송은 저에게 늘 해야 하는 것이죠, 없으면 살 수 없는 공기 같은 의미죠. 영화는 지금 제게는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하다보면 이것도 ‘직업’이 되겠죠. 영화 얘기를 하면 아직도 쑥쓰러워요. 그래서 영화제도 가지 않는데, 2편 정도 더 하면 쑥쓰러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규에게 방송이 공기라면, 영화는 술 같은 것이 아닐까. 마시지 않아도, 먹지 않아도 되지만 인생을 즐겁게 하는 ‘묘약’. 이경규에게 영화는 술만큼이나 돈도 많이 들고 끊기도 어려운 중독의 대상이다. 이경규는 왜 그토록 영화에 집착할까?

“제가 어린 시절 부산 초량에서 성장했어요. 집 주변이 다 극장이었죠. 어릴 때 TV는 안 봤어도, 영화를 보면서 상상 속에서 주인공이 돼 보기도 하고 배우와 감독의 꿈을 갖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이야 송강호씨나 김윤석씨처럼 경상도 억양과 사투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만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안 그랬죠. 사투리는 ‘방송부적합’이었습니다. 배우로선 빵점이었고, 그래서 개그맨으로 방향을 틀었는데도 사투리를 쓰기 어려워서 생각해낸 것이 중국어 흉내였다니까요.(이경규는 개그맨 데뷔 초 홍콩영화의 대사를 흉내낸 엉터리 중국어 개그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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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개그맨, 방송인, 영화인. 뭐라고 불러도 이경규를 표현하는 단 한마디가 있다면 대중에게 웃음으로 위안을 주는 사람이다. ‘전국노래자랑’은 가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단 몇 분간이라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마이크 앞에 서는 이름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희극이다. 이경규는 웃음의 철학을 “어거지가 아닌 생활 속의 웃음,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유머”라며 “꼬마부터 할아버지까지 세대를 가로지를 수 있는 것이 웃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리얼버라이어티쇼가 대세가 되면서 출연자를 (상황에) 던져 놓고 찍는 포맷이 유행이 됐다, 그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죽다 살아남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과연 이게 옳은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상대를 공격하면서 얻는 가학적이며 자극적인 웃음의 시대, 돌이켜보면 이경규가 빚어내는 유머는 날선 송곳으로 찌른다기 보다는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소탈한 추임새가 많다. 그가 부리는 악의 없는 ‘허세’나 대수로울 것 없는 수작을 보며 팬들이 즐거워한다. ‘제작자’라는 타이틀에 그는 여전히 “쑥쓰럽다”를 연발하지만, 영화는 그저 대중과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는 ‘이경규식 웃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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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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