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해외영업팀에서 일하는 직장인 김모(31ㆍ여) 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패셔니스타다. 사람 만나는 일이 잦은 김 씨는 이른바 TPO(시간, 장소, 상황)에 걸맞는 옷차림과 옷 매무새에 유독 신경을 쓰는 편이다. 때문에 한 달 수입의 3분의 1 가까이 쇼핑에 투자해왔다. 하지만 최근 김 씨의 쇼핑 경향이 바뀌었다. 백화점 대신 온라인 쇼핑을 주로 하고, 브랜드 의류와 디자인이 비슷한 저렴한 옷을 구입하려 애쓴다.
김 씨는 “결혼 계획이 있는데 치솟은 전세가격이나 수천만원에 달하는 결혼비용을 생각하면 소비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며 “저렴한 가격에 패션감각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가가 오를 때 가계소비에서 가장 먼저 줄이는 부분은 김 씨의 경우처럼 의류구입비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서울 수도권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향후 소비계획에 대해 응답자의 86.8%가 소비를 줄이겠다고 답했으며 여성의 55.8%가 의복소비를 조절하겠다고 말했다. 패션은 ‘경기 부침’을 예견하거나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불황ㆍ호황 치마길이를 보면 알 수 있다(?)=불황엔 빨간 립스틱과 미니스커트, 하이힐이 유행한다’는 속설이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오히려 화려한 스타일이 인기를 끈다는 것. 물가 상승률이 15%에 육박했던 1990년대 초에는 롱 스커트가 유행했지만 1990년대 후반 경제가 살아나면서 미니스커트 붐이 다시 일었다는 것도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이처럼 치마길이와 경기변동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지표를 ‘헴라인 지수(Hemline Index)’라고 한다. 헴라인 지수가 높아질 수록 치마길이는 더 짧아진다. 하지만 1926년 경제학자 조지 테일러는 오히려 경기가 나쁠 때 치마가 길어진다고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여성들이 실크 스타킹을 보여주려고 치마를 짧게 입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스타킹을 살 여유조차 없어 긴 치마가 유행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불황과 패션에 대한 다양한 속설이 존재하는 이유를 사람들의 심리가 경제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고 이를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다”며 “‘립스틱 효과’처럼 저비용 아이템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나, 불황에 화려한 컬러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 불황엔 ‘패스트 패션’이 뜬다=경기가 안좋을 수록 SPA(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가 인기를 끈다. SPA 브랜드는 기획에서 제조ㆍ유통ㆍ판매까지의 기간이 짧고 소비 트랜드를 빠르게 반영하기 때문에 ‘패스트 패션’이라고도 불린다.
저렴한 가격에 최신 유행을 반영하는 제품 특성상 불황일수록 소비자들은 실용성을 강조한 ‘패스트 패션’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서울ㆍ수도권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SPA 브랜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98.4%가 “SPA 브랜드에 대해 알거나 들어봤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42.7%는 “SPA 의류를 다른 브랜드보다 선호한다”고 말했다. 또 SPA브랜드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84.8%)이었으며 ‘다양한 상품 종류’(49.5%)와 ‘디자인’(41.9%)이 그 뒤를 이었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중ㆍ저가형 의류 브랜드인 SPA 브랜드의 성장세는 불황기에도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