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권의 편협한 조문 문화가 실망스럽다. 운명을 달리한 상대 진영 거물인사에 대한 예의가 인색하다 못해 옹졸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지난 주말 공교롭게도 남덕우 전 총리와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 대행이 하루 시차를 두고 타계하자 이런 행태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주역이었던 고인들의 빈소 모습이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남 전 총리의 빈소에는 여권 인사들로, 박 전 총재권한대행의 영안실에는 야권 관계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 진영 주요 당직자 등이 직접 조문했다는 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다. 이념과 진영 논리의 프레임에 갇혀 조문까지 정치화되고 있는 우리 정치권의 수준이 한심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고인들은 모두 국가 지도자급 인사다. 이념과 정치색을 떠나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대신 전한다는 의미에서라도 여야 지도부는 최소한의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하는 것이 도리고 상식이다. 그런데도 달랑 조화하나 보내고 말았다니 그 편협함이 말할 수 없이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남 전 총리에 대해 그 흔한 애도 논평조차 내지 않았다는 대목에선 참담한 심경을 가눌 길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 조문단을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민주당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우리 경제를 반석에 올린 지도자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의 편협한 추모 행태는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만 찾아 헌화했다. 또 김한길 민주당 신임 대표 역시 선별적으로 전직 대통령 묘소를 둘러봐 여론의 비난 화살이 쏟아지기도 했다. 5ㆍ18 추모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나 엊그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행사장에서 민주당 김 대표가 일부 격한 추종자들로부터 멱살을 잡히는 곤욕을 치른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이달 중, 늦어도 다음달 중 출범 예정으로 막판 인선작업이 한창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백 가지 정책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의 솔선 한 번이 더 효과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념은 공공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받아들여야 발전이 있다. 정치권이, 특히 여권이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