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대연 기자]선 몇 개를 슥 그었다. 얼리(early) 스케치로 불리는 작업이다. 다시 선을 추가하고 색을 입혔다. 램프, 그릴, 휠 등도 집어 넣는다. 사진 처럼 보이지만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 랜더링(사실감을 불어넣은 3차원 그림)이다.
작업대가 바뀌었다. 이번엔 진흙과의 씨름이다. 처음에는 10㎝짜리, 다음은 40㎝짜리, 그 다음은 실제 크기의 4분의 1 정도의 진흙 모형이 만들어진다. 색이 들어간 얇은 시트지를 붙이자, 실제 자동차 모습과 차이가 없다.
2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동관 4층에서 만난 백승대 선행디자인팀장은 “자동차 디자인 프로세스 4가지 가운데 이제 첫번째 단계가 끝났을 뿐”이라며 “컨셉트카는 1년, 양산 직전까지 챙겨야 하는 양산차는 약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단 실물 보다 작은 진흙 모형이 만들어지면 디자이너는 컴퓨터 작업을 통해 실물과 비슷한 가상의 디지털 모델을 만든다. 이 때 디지털 데이터는 나중에 설계 등에 활용된다. 다음은 실제 차량 크기와 동일한 진흙 모형을 만들어 보는 디자인 모델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색상, 재질, 소재, 조명 등이 모두 반영된 감성 디자인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자동차 디자인이 완성된다.
백 팀장은 “상황에 따라 앞뒤 단계가 바뀌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최초 구상 단계 부터 마무리까지 디자이너의 머릿속에 현대차의 고유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와 새롭게 디자인할 차량 컨셉트가 들어가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25명의 디자이너가 근무하는 이 곳 선행디자인팀은 1년에 1~2대 가량의 컨셉트카를 만든다. 지난 3월 서울모터쇼에서 공개한 컨셉트카 ‘HND-9 벤에이스’도 여기서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양산차 선행 디자인, 그리고 미래 이동수단(퓨처 모빌리티)에 대한 디자인도 진행한다. 벨로스터의 경우 컨셉트카 제작에 이어 양산차 선행 디자인까지 담당했다. 디자이너 500여명 포진한 남양연구소내 디자인센터가 주로 당장 출시해야 하는 양산차를 디자인 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유럽, 미국, 중국, 인도 등에 있는 디자인센터는 현지 생산 모델 디자인을 챙긴다.
자동차 디자인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4m나 되는 입체 조형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상상해야 한다. 시속 200㎞로 달리는 차 안에서 운전자가 계기반 눈금과 각종 조작버튼을 확인하고 누를 수 있도록 차량 내부를 꾸미는 것도 디자이너의 몫이다. 인간공학, 감성공학과의 접목은 기본이 돼 버렸다. 지난해 디자이너들이 단체로 경기도 이천 도자기박물관에 다녀온 것도 다양한 조형물을 연구하기 위해 위해서다. 출발은 늦었지만 현대차 디자인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현대차는 미국의 조사업체 J.D.파워의 디자인 평가에서 도요타, 폴크스바겐 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백 팀장은 “현대차 디자인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우수한 인재가 몰리고 있다”며 “최근에는 글로벌 경쟁업체에서 일하던 디자이너들도 많이 입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연말에 출시되는 차세대 제네시스, 내년 LF쏘나타를 통해 다시 한번 현대차 디자인이 혁신을 시도할 것”이라며 “심플하면서도 세련되며, 면이 정제된 안정적인 디자인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