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기자]할아버지들의 유럽 배낭여행기 tvN ‘꽃보다 할배’는 시작 전부터 큰 화제가 됐다. 나영석 PD가 지상파에서 케이블 채널로 옮긴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과 아직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70~80대 노년 배우들을 출연시켜 리얼리티 예능물을 찍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역시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 콤비의 예능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방송 첫회 만에 이렇게 구체적으로 캐릭터를 잡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간결하게 상황을 유도해 디테일한 모습들을 깨알같이 살려내는 나 PD의 연출력은 이미 ‘1박2일’에서 검증됐다.
매사 적극적이어서 늘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직진순재’ 이순재, 별로 말이 없지만 한 마디가 재미있고 시크한 매력이 있는 ‘구야형’ 신구, 분위기 메이커이자 로맨티스트인 ‘젠틀근형’ 박근형, 계단을 오르기 힘들 정도로 짐이 무거워 가방에서 장조림을 빼 ‘장조림 하이킥’을 날린 막내 ‘백심통’ 백일섭 등 드라마상의 연기로는 수없이 봤지만 실제의 모습은 별로 본 적이 없는 이들의 본 모습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은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 같아 보였다. 하지만 ‘꽃할배’처럼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이 배낭여행에 도전하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 이것이 나 PD의 프로그램 기획 의도였다. 캐스팅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이순재에게 제의하자 흔쾌히 수락해줬다. 다만 네 사람을 함께 모아 열흘간 여행을 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다행히 ‘백년의 유산’에서 옛날국숫집 장인으로 나왔던 신구를 조금 빨리 죽여(?) 네 사람이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나 PD는 별것도 아닌 일의 스케일을 키워 캐릭터의 특성도 살리고 재미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1박2일’에서 족구나 탁구로 결정하는 복불복 게임을 스태프 80여명까지 몰고 들어가 마치 운동회나 축제처럼 만든 전례가 있다.
‘꽃할배’들의 배낭여행을 밋밋하지 않게 탄력적으로 만들어낼 ‘짐꾼’ 이서진의 기용은 나 PD의 한 수였다. 이미 지난해 초 ‘1박2일’ 절친 특집에서 이서진의 매력은 발견됐다. 사극과 현대극에서 근엄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이서진은 강릉여행길에 제작진이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 미션을 시키자 “트림도 안 나온다”고 발끈하는가 하면, 털털하며 초췌한 모습 등 다양한 매력을 보여줘 ‘미대형’ ‘동네형’ 등의 별명을 얻었다. 이번에도 걸그룹과 같이 여행간다는 나 PD의 거짓말에 속아 실상을 알고 당황하는 모습은 큰 재미를 줬다. 이서진은 “처음 닷새 동안은 국경을 넘어 도망갈 생각도 했다”고 했지만 대선배들을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도 강했다. 드라마에서는 주류와 메이저에서 항상 주인공만 맡는 이서진이 예능에서는 당하는 캐릭터가 되니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았다.
‘꽃보다 할배’ 방송 전에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10~30대 젊은 여성들이 할아버지들의 모험여행기를 좋아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최연소 출연자인 이서진만 해도 만 42세다. 그런데 1회를 가장 많이 시청한 사람들은 30대 여성으로 나타났다.
젊은 여성이라도 해서 나이 든 남자들을 보기 싫어하는 건 아니다. 취향이든, 외모든 어떻게 보여주고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꽃보다 할배’가 예능의 외연을 확대한 덕에 노년들도 예능의 대상으로 들어왔다. 이들이 연출을 최대한 배제한 관찰예능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궁금하다. 40대도 관리를 잘못하고 행동이나 말을 촌스럽게 하면 80대로 보일 수 있고, 70~80대도 40대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는 시대다.
요즘 예능이 출연자들을 가혹한 환경에 처하게 한 뒤 그 반응을 보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유럽 배낭여행은 일생일대 모험일 수도 있지만 50년 지기이기도 한 이들이 어떻게 여행하는지를 보는 건 흥미로울 수 있다. 나 PD는 이들의 반응에서 의외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짠한 감동의 장면도 많이 있다고 한다. 특히 유쾌한 막내로 즐겁게 투정부리며 가장 많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문제적 인물’ 백일섭이 있어 밋밋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꽃할배’의 배낭여행기가 괜찮다고 느낀다면 부모님을 효도여행 한 번 보내드리는 건 어떨까. 그것이 시종 여행가이드를 따라다니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약간의 모험을 가미할 수 있어 좀 더 자유롭게 여행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배낭여행이라도 부모님이 원한다면 추천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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