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반장(설경구 분)에게 ‘에이, 거짓말~’이라고 대꾸하는 대사가 있었죠. 그런데 이 대사가 너무 여성스럽게 들려서 손발이 오글거려 못하겠는 거에요. ‘개뻥!’이라고 바꿨죠.”
한참 고참인 선배의 득의양양한 무용담에 ‘개뻥!’(얼토당토 않은 거짓말이라는 뜻의 속어)이라고 일갈하는 당찬 한효주(26)가 있는가 하면, ‘출동’을 명받고 “다녀오겠슴당!”이라며 애교섞인 인사를 날리는 ‘귀요미’ 막내도 있다. 한효주는 시나리오에 분명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써 있는 평범한 대사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바꿔, 극중 인물의 또 다른 성격을 드러내는 순간으로 만들어냈다. 이렇듯 영화 ‘감시자들’은 한효주가 가진 다양한 매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돌이켜보면 전작에서도 그랬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왕비는 구중궁궐같은 내면에 자신을 꼭꼭 숨기는 듯 싶다가도 돌아보면 어느새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얼굴에 담아내고 있었다. ‘반창꼬’에서 남자에게 거침없이 ‘들이대는’ 왈가닥 여의사는 찧고 까불고 발산하는 선머슴같은 인물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툰 사랑과 연민을 수줍어 하는 여성이 있었다. 한효주는 자신의 매력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본능적으로 영리한 배우다. 영화 ‘감시자들’의 개봉(4일)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한효주를 만났다.
“원래 순서상으로는 ‘광해’와 ‘반창꼬’보다 먼저 출연을 결정했던 작품이에요. 원작(홍콩영화 ‘천공의 눈’)의 내용과 여성 캐릭터가 매력적이었거든요. 처음 제안받은 시나리오에선 제가 맡은 ‘하윤주’가 훨씬 밝고 덤벙대는 인물이었는데, 저는 전형적인 ‘신참’ 캐릭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좀 더 ‘시크’(chic)한 인물, 말은 없지만 강인한 여성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결과적으로는 차갑고 낯가리는 일면도 있지만 인간적이고 털털한 성격도 가진 훨씬 입체적인 캐릭터가 됐죠. 촬영할 때는 좀 더 냉정한 톤과 애교있는 억양의 대사를 함께 찍어서 감독님들에게 ‘알아서 골라 쓰세요!’라고 했죠.”
한효주가 연기한 ‘하윤주’는 경찰 내 특수조직인 감시반에 투입된 신참 여경이다. 베테랑이자 감시반 지휘자인 황반장과 한 조를 이룬다. 하윤주는 아직 감시반원보다는 경찰로서의 사명감에 투철하고, 연민이나 정의감같은 인간적인 감정에 곧잘 빠지지만 무엇보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작전에 대한 이해도가 탁월하다. 황반장과 하윤주가 주축이 된 감시반이 한 치의 틈도 허락치 않는 용의주도한 범죄조직 리더 제임스(정우성 분)와 대결한다. 영화는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쫓고 쫓기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려가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하윤주가 동료들의 희생 속에서 인간으로서, 경찰로서 한 뼘 성장해가는 드라마다.
영화 속 인물은 실제 한효주와 ‘화학적인 결합물’이기도 하다. 출연 제안을 받고 촬영에 들어갈 때만 해도 “뒤늦게 온 사춘기를 앓아서 온통 날이 서 있을 무렵”이라고 했다. “세상에 괜히 화가 나고 모든 상황에 대해 ‘왜?’라는 의문이 들어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던 때”라고 스스로 표현했다. 그래서 하윤주는 마냥 밝은 캐릭터로만 표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광해’ ‘반창꼬’에서 ‘감시자들’을 촬영하며 카메라 앞에서 웃고 풀고 발산하며 한효주의 사춘기도 지나갔다. 한효주는 “지금이 너무 좋다”고 했다.
한효주는 최근 한 인터넷포털사이트의 제안으로 ‘동구리’라는 캐릭터로 유명한 현대미술작가 권기수와 일종의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하기로 했다. 권기수 작가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한효주가 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한효주는 “태블릿PC의 어플로 작업 중”이라고 했다. “얻을 것도 많고 자극과 영감도 받을 수 있는 협업이 좋고,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것이 한효주의 말이다. 한효주는 브라운아이드소울,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음반이나 공연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효주가 뛰놀 수 있는 운동장은 더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