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대란’해소 중책맡은 역대 최연소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할말은 하는 기관장’ 변종립이 말하는 그의 ‘별난 에너지’
“원래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말씀하시나요?” “내 원래 성격이 거침이 없어요. 공무원이 아니라 원래는 예술 쪽 일을 하면 더 잘 맞았을지도 모를 것 같은데…그래도 지금은 이게 천직 같네요.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 거지? 하하하”
지난 4월 30년 동안 몸 담았던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공무원 생활을 정리한 변종립(52)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정부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유독 인기가 높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강한 소신과 날카로운 업무 파악능력 때문에 기자들이 ‘변 기자’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다. 그런 변 이사장이 새 정부 들어 첫 고위직 인사에서 미끄러졌다. 많은 선후배들은 그의 능력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국가는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2개월 뒤인 지난 6월 에너지관리공단 역대 최연소 이사장에 기용됐다.
만남에 앞서 그는 몇 번이나 인터뷰를 거절했었다. 그는 “헤럴드경제 휴먼다큐는 지금껏 나왔던 인물들을 보니 상당한 업적을 쌓은 분들이 주인공이었는데 나는 아직 이 자리에 나올 만한 사람이 아닌것 같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하지만 고위공무원 때부터 유독 별종으로 소문난 그의 30년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향후 인생이 더 궁금했다. 때마침 전력난에 원전 문제 등 에너지 대란(大亂)에 빠져있는 대한민국을 그의 입으로 진단해본다.
▶에너지관리공단의 변신을 꾀한다=“지금까지 에너지관리공단은 예산받아다가 정부가 만들어놓은 정책을 잘 집행만 하면 되는 수탁업무 위주의 기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있는 한 이제 아닙니다. 기존 업무도 잘해야겠지만 새로운 에너지업계 환경에 맞는 사업을 발굴해 수익을 올리는 기관으로 만들 겁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지난 1980년 2차 석유파동 직후에 설립된 에너지 절약사업 전담기관이다. 전력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함께 전력 수요관리 등 절전 운동을 펼치는 것이 주업무다.
역대 이사장들을 보더라도 1대 이사장이었던 육군 중장 출신의 김용금 씨를 비롯해 해군참모총장 출신 최상화(4대) 씨, 공군참모총장 출신의 서동열(5대) 씨 등 초기에는 전두환ㆍ노태우 정권의 군 출신 최고 핵심 실세들을 위한 자리였다. 태생적으로 일을 벌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업무를 받아다 하는 곳이다. 하지만 변 이사장은 이런 에관공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포부다.
“세계 전력시장에서 수요 관리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전력피크 때 정부가 기업들에 돈 주고 공장을 못 돌리게 하는 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잘 파고들면, 아무리 전기가 부족한 피크 때라도 잉여전기를 갖고 있는 곳이 있거든요. 이런 곳들을 찾아내 전력거래소 등과 매치시켜 주는 중개선 역할을 에관공이 할 수 있습니다.” 틈새를 파고드는 능력은 공무원이라기보다는 사업가에 가깝다.
변 이사장은 에관공이 글로벌 사업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했다.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효율적으로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곳들이 넘쳐납니다. 우리 기술력으로 컨설팅해주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이 과정에서도 해당 국가에 필요한 자재나 기계는 우리 국내 기업들로 연계해주는 일도 할 수 있어요.”
▶전기요금 때문에 에너지 정책이 다 막혀=27회 행정고시 출신의 변 이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에너지정책 전문가다. 지난 2011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기후변화에너지자원개발국장을 지냈고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결정 과정’을 주제로 박사논문도 발표했다.
그에게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경제성이 없어서죠. 그래서 전체 에너지의 1.7% 점유율에 그쳐있는 것 아니겠어요. 가장 큰 원인은 전기요금입니다.”
전기요금 인상 논란은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가장 큰 이슈이자 고민이다. 원가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에 올리기는 해야겠지만 막상 올리자니 기업이나 서민들의 저항이 거셀 수 있고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은 우리기업의 수출경쟁력과도 직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고민들 때문에 어느 누구도 공개석상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원전은 시민단체가 안된다고 하지, 신재생은 아직 경제성 없어서 안되지, 여름 겨울되면 전기는 부족해서 에어컨 끄라고 하지 기업에 돈줘가면서 비정상적인 부하관리 들어가지 이게 뭡니까…전기료를 유럽만큼 비싸게 가자는 것도 아니고 원가보다는 조금 올리면 어느정도 해결될 일 아닙니까?” 하고픈 말 속시원히 하는 그다.
새 정부의 어젠다인 창조경제와 관련 기업들에게도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피크타임에 기업이 전기를 안쓰면 돈주는 정책보다는 쓰면 돈을 더 내도록 하는 정책이 앞으로 가야하는 바입니다. 사실상 대기업들 이런 부하관리로 인해 사실상의 지원금을 받아온 것 아닙니까? 창조경제에 맞는 사업은 전기료가 비싸도 성공할 수 있는 사업들입니다. 에너지수급문제를 해결하려면 전기료 올려야합니다. 솔직히 자본주의에서 주머니에 부담 안주면 아끼기 어렵다는거 다들 인정하는 바 아닙니까?”
▶공무원이 되기 싫었던 ‘리얼 공무원’=서울대ㆍ하바드대를 거치고 고위공무원을 거쳐 50대 초반에 공공기관장을 하고 있는 그에게 ‘성공’이란 수식어는 누가 보더라도 잘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패배의식 속에 살았다고 고백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원하는 학교에 진학을 못했고 그때 한참 방황을 하다가 남들한테 내 능력을 한번 인정 받기위해 봤던 행정고시에 붙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됐어요. 사실 아버지께서 당시 재무부 국세청 쪽 공무원이셔서 그분의 그런 보수적인 성향을 닮고싶지 않았던 터라 공무원만큼은 하지 않으려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그분의 길을 걷고 있네요.”
변 이사장은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심지어 행정학과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말이 좋아 적성이지 우리때 그런게 어디있어요. 그냥 다 점수 맞춰서 간거지”라고 쿨(Cool)하게 답한다.
자식에게도 3대째 이 일을 권하고 싶냐는 말에는 크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절대”라고 부인한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고시3개를 모두 합격한 고승덕씨가 ‘다시 태어나도 이길을 걷겠다’고 했다던데 난 절대로 안합니다.”
이 일을 안했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사실 좀 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소질이 남달랐던 그림 그리기 때문에 사실 화가가 되는게 꿈이었어요. 나중에 대학에 가서는 방송사 프로듀서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만일 자식들이 그길을 걷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돕고 싶네요.” 실제로 화가와 프로듀서의 피가 흐르는걸까? 변 이사장의 먼 친척인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도 예전 한 인터뷰에서 어릴적 꿈은 화가였다고 밝힌 바 있고 변 이사장의 둘째 아들은 서울 모 대학 신문방송학과에 재학중이다.
▶“일단 뛰어들었으면 끝까지 가고싶었는데 아쉽다”=큰 뜻 없이 시작한 공직 생활이었지만 변 이사장은 열정을 다했고 국가를 위한 마음은 남달랐다. 공무원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일을 꼽아달라고 했다.
“사무관일 당시 중소기업정책과에 있을때 막 김영상 정권이 들어섰을 때였는데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쏟아내야했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던 1조원짜리 정책 프로젝트를 만들었는데 정확히 한 달 동안 집을 못들어갔습니다. 씻는건 2~3일에 한번 주변 목욕탕에서 하고 속옷도 집에서 배달시켜다가 입었던 기억이 날 만큼 힘들었는데. 그때 만든 중소기업 정책이 역사상 최초였고 그게 지금의 정책들까지도 뼈대 역할을 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 1급승진 인사에서 미끄러졌다. 그는 솔직했다. “사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무원들은 인사에서 밀리면 그 이유가 거의 명명백백하거든요. 그런데 저도 청와대도 기재부도 산업부도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고하는데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그 답답함 때문인지 그는 평생의 멘토를 잃었다. “제게 건 기대도 크셨던 만큼 공무원의 생리를 너무 잘 아는 아버지께서 이런 결과를 보시고는 한없이 속상해하시더라고요 하필 그렇게 집에서 쉴 당시에 갑자기 돌아가셨네요.”
잠시의 먹먹함 뒤 그는 다시 말했다. “자의반 타의반 시작했던 30년 인생의 공무원 생활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끝난 것은 좀 아쉬웠어요. 하지만 지금의 막중한 자리에서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마음으로 여기서 끝을 보려고 합니다.”
사실 에관공 이사장 자리는 전임 허증수 이사장이 사임한 이후 정치권의 친박계 한 인물이 유력하게 거론되던 터. 하지만 정부와 청와대는 낙하산 보다는 이분야 전문가인 변 이사장을 택했다.
▶입바른 소리는 할 줄 아는 기관장이 목표=에너지관리공단은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았다. 기관평가, 기관장평가 감사평가 모두 ‘D’를 받았다. 우스갯 소리로 ‘이번 경평 결과는 3D 입체평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지난 6월 임명된 변 이사장 입장에서는 오히려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바닥에서 시작해 개혁과 도약의 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사실 이렇게 낮은 평가가 나온 건 경영평가의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에관공이 해외에서 수익 사업을 하는 게 있었는데 이것이 지난해로 계약이 만료됐어요. 거의 유일했던 수입이 줄어들자 평가자들이 봤을 때는 큰 감점요인으로 보였던 겁니다. 우리는 수익이 중심이 되는 기관이 아니잖아요. 기관 본연의 업무를 봐야 하는데….”
공기업에 대한 경영평가제도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관장 평가나 기관평가를 따로 할 필요는 없는데 비효율적인 평가가 이뤄지고 있고, 공공기관도 다들 특성이 있는데 이를 서로 다른 지표나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도 객관성을 잃은 것 같고…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최소한 평가 주체가 현재의 기획재정부 중심이 아닌 산하 부처별로는 나눠져야 기관 각자의 특성을 알고 평가가 이뤄진다고 보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저런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혹여나 적을 만든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것이 단초가 돼 고위 공무원의 꿈인 장ㆍ차관의 길에서 먼저 이탈한 것은 아닌지.
하지만 변 이사장은 “앞으로도 할 말은 하는 기관장이 되고자 한다”고 말한다. 강단 있고 재치 만점인 그는 사실 새 시대의 고위공무원상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담=박승윤 경제부장
정리= 윤정식 기자/yjs@heraldcorp.com
변종립이 살아온 52년…
▷1961년 서울 출생 ▷1980년 경신고 졸업 ▷1984년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198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 졸업 ▷1999년 하바드 행정대학원 정책학과 졸업 ▷2010년 성균관대 정책관리대학원 정책학 박사 ▷1984년 행시 27회 합격 ▷2008년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담당관 ▷2009년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정책국장 ▷2010년 지식경제부 투자정책관 ▷2011년 지식경제부 기후변화에너지자원개발정책관 ▷2012년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정책관 ▷2013년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