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성장한다.

마냥 밝고 앳됐던 얼굴엔 삶이 이루는 무늬가 다양한 채도로 깃들기 시작했다. 꾹꾹 눌러담은 감정이 더 힘이 있고, 말을 잃은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영화 ‘소녀’(감독 최진성)에서 김윤혜(22)는 고등학생 교복을 입었지만, 제목과는 반어적으로 마치 “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라고 조용히 읆조리는 작품같다. 여배우로서 온 몸의 감각을 깨워낸 진지한 첫 출발이라 할만하다. 김윤혜는 ‘소녀’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제가 맡은 여고생 ‘해원’은 속을 알 수 없는 소녀죠. 얼굴은 차분하고 표정은 평온해보이지만 속에서는 감정이 격랑을 이루는 인물이에요. 어렵고 힘들고 혼나는 일이 있더라도 꼭 도전하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소녀’는 작은 외딴 시골, 소문과 시선의 폭력 한 가운데에 놓여진 두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들의 입에 떠다니는 말은 어린 주인공들을 사냥감삼아 잔혹하게 희롱하고, 소년 소녀는 결국 죽음과 가까운 거대한 물리적 폭력과 맞딱뜨리게 된다. 소년과 소녀는 잔인한 세상에 맞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스산하고 황량한 한겨울의 호수. 도시에서 온 소년과 홀로 스케이트를 지치는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스웨덴영화 ‘렛미인’을 연상케 한다. 김윤혜는 감독이 전해준 쓸쓸한 겨울 풍경이나 외로운 동물의 사진 등을 보며 감정과 분위기를 잡았다. 극중 스케이트를 지치는 장면을 위해 전 국가대표 빙상 선수에게 3주간 훈련을 받았고, 시골의 소녀 역할을 하기 위해 경상도 사투리도 배워서 연기했다.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설정이지만, 순수함과 비밀스런 상처를 간직한 극중 소녀에 자신을 잘 포개놓았다. 부산영화제와 시사회에서 먼저 본 영화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이 이어졌고 출연 제안도 부쩍 많아졌다. 칭찬을 들을 때마다 “매번 부족한 부분이 보여 스크린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 하겠다”며 겸연쩍어 하지만, 지난 늦겨울 조금씩 풀려가는 호수의 얼음 위에서 아슬아슬한 스케이팅 장면조차 의연히 해낸 것처럼, 작품 전체를 잘 이끌갔다는 데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묻어난다.

“처음에는 도통 알 수 없었던 해원의 감정 속에 어느새 제가 빠져 있는 느낌을 촬영을 하면서 받았어요. 끝나고 나서는 무엇인가 빠져나간 듯, 자꾸 해원과 윤수(극중 소년의 이름)가 그리워져요.”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해 그리움으로 긴 여운을 남긴 촬영. 김윤혜는 이제 한 편의 작품을 온전히 경험하고 누렸다. 김윤혜는 열 두살에 화보 모델과 뮤직비디오 출연 등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최강 울엄마’ ‘강력반’ ‘넌 내게 반했어’ ‘선녀가 필요해’ 등을 거쳐 영화로는 ‘점쟁이들’에 조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일찍 데뷔한 만큼 조급한 마음도 컸지만, 이제 길게 보고 스스로를 갈고 닦아 나갈 생각이다. “늘 성장하는 배우, 그리고 서른 즈음엔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다지며 김윤혜는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의 인터뷰를 마쳤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김윤혜<br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김윤혜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김윤혜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김윤혜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김윤혜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김윤혜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