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촛불의 불꽃 그리고 눈’ ‘겨울철 가장 심한 추위 그리고 여름철 가장 심한 더위’ ‘첫번째 반 서리’ ‘증류수의 얾.’
온도를 측정하는 데 물의 끓는점과 어는점을 척도로 사용하는 건 마치 진리처럼 당연해 보이지만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고정점은 이렇게 혼란스러웠다. 버터의 녹는점을 뜨거운 고정점으로 삼기도 했고, 아이작 뉴톤조차도 흔히 혈온으로 불리던 사람 몸의 온도를 1710년 자신의 온도 척도에서 고정점으로 사용했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석 석좌교수의 ‘온도계의 철학’(동아시아)은 온도계가 없던 시절, 어떻게 온도를 측정하고 개념을 만들며 온도계를 발명했는가를 다룬다. 당연시되는 물이 끓고 어는점을 측정하는 문제를 그가 다시 거슬러 올라간 것이 엉뚱하게 비쳐지기도 하지만 ‘온도계의 온도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닿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장 교수는 이 문제에 도전했지만 쉽게 찾지 못해 계속 파고들었다. ‘온도계의 철학’은 그가 10년 매달린 결과물이다.
그는 2004년 영국에서 발간된 이 책으로 일약 세계적 과학철학자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가장 우수한 과학철학 책에 수여하는 ‘러커토시상’과 영국과학사학회가 과학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에세이 저자에게 주는 ‘이반 슬레이드’상도 받았다
그는 과학의 난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루며 발전을 이루게 되는지의 복기 차원이 아니라 그 궤적에서 과학과 인식의 일정한 패턴을 찾아냈다.
고정점을 찾는 과학자들의 도전은 지속적이고 길었다. 물이 끓는점이라는 하나의 고정점을 확정해 가면서 나타나는 문제들, 즉 물이 끓는점에서 끓지 않을 때, 진정한 비등점은 어디인지, 끓음이란 무엇인지 등을 어떻게 극복해갔는지 저자는 세밀히 살핀다. 또 논쟁과 실험을 거친 뒤 수치 온도계의 정립을 위한 과학적 노력과 철학적 난제의 해결, 수은이 얼거나 끓을 때는 온도계가 깨지거나 녹아버리는데 이때는 어떻게 온도를 잴 것인지, 수은의 어는 점과 가마의 온도를 측정하는 법, 온도측정법과 열 이론의 연결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뤄졌는지 등 온도계의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그는 역사를 살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현상이 고정점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개념이 애초에 설명하던 현상 영역 너머로 확장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물과 행위 간의 연결성 등을 분석해나간다.
저자가 이런 과정을 통해 도달한 과학에 던진 통찰은 과학의 진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재구축한 데 있다. 그는 측정방법을 정당화하려고 할 때 경험주의적 토대론에 내재한 순환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에 대처하는 유일하게 생산적인 방법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제안하는 대안은 ‘인식적 반복’의 방법에 의해 보강되는 일종의 정합론이다. 인식적 반복은 우리가 처음에 기존의 지식체계를 어느 정도 존중하면서도 다 옳다고 굳게 믿지는 않은 채 그것을 채용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처음에는 확증된 체계에 기초하면서도 초기의 체계를 다듬거나 심지어 교정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탐구에 나선다. 과학에서 성공적인 발전과정을 소급적용해 정당화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기 교정의 과정이지 의심을 품을 수 없는 어떤 기초에 의거한 확신은 아니다.”(본문 중)
철학이 과학을 설명해주는 식의 이런 그의 연구는 상보적 과학으로 불린다. 그는 상보적 과학이 확장하며 분화하는 현재의 전문가적 지식과 더불어 옛 과학의 재생, 과거와 현재 과학에 대한 새로운 판단, 그리고 대안의 탐색을 수행해 새로운 지식체계를 더 많이 창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학이 반드시 첨단의 무엇을 연구하는 것만이 아니며 버려졌거나 잊힌 지식을 되살려내는 일도 지식 창조의 한 형태라는 선언과 현재 의심의 여지없는 과학적 발견도 여러 선택지 중 하나라는 다원론적 시각은 과학의 눈을 새롭게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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