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미소가 참 매력적이다. 미소만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엄지원은 캐릭터에 굴하지 않고 작품을 선택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극장가를 감동으로 물들인 영화 ‘소원’에서는 소원이 엄마 미희로 분해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아직 미혼임에도 불구 스크린에서 확인한 엄지원은 ‘엄마’ 그 자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애써 살을 찌운 듯한 몸매, 그리고 사투리까지 완벽히 구사하며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든 연기를 선보였다.
진심으로 연기하는, 굳이 꾸미려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그를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소원’,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엄지원은 ‘소원’에 쉽게 합류하지 못했다. 어떤 여배우라도 쉽지 않았을 결정이었기에 한 차례 고사했지만, 다시 시나리오가 손에 들어왔을 때 ‘인연’이라고 여겼단다.
“원래 ‘소원’ 아닌 다른 제목이었죠. 그 때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어요. 캐릭터도 그렇고, 아직 제가 하기엔 벅차다고 생각했죠.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극복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후 2년이 지나고 다시 책을 받았는데 ‘이 작품이 나랑 인연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번째 책을 읽을 때는 처음에 느낀 거부감이 없었어요.”
성폭행을 당한 아이의 부모 역할을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하면 과잉된 감정 연기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감정이 몰입되지 않아 애를 먹을 수도 있다.
“저랑 (설)경구 오빠가 애초에 약속한 게 있어요. ‘감정을 너무 많이 쏟아내지 말자’는 거였죠. 관객들에게 감동을 강요하지 말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쏟아내고 싶은 감정이 너무 많은데 참고 삭혀야 했거든요. 그렇게 연기하는 건 힘들었지만, 믿을 수 있는 배우들이랑 작업할 수 있어서 심리적으로는 편했죠. 하하.”
감정신보다도 더 공을 들인 장면은 바로 일상 속 미희의 모습이었다. 실제 평범한 가족을 보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꽤나 공을 들였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소원이가 사고를 당하고 이겨가는 감정보다도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었어요. 비빔국수를 만들고, 학부형 모임에 가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가족의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 미희 역 위해 ‘여자’ 엄지원 버렸다
엄지원은 이번 영화에서 ‘예뻐 보이길’ 거부했다. 그는 “오히려 스태프들이나 감독님은 제 많은 모습들을 알기 때문에 꾸민 모습에 어색해 하신다”며 웃어 보였다.
“스태프들과 감독님은 제 많은 모습들을 알기 때문에 으레 ‘미희’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오히려 꾸민 모습에 어색해 하셨죠.(웃음) 현장에서 아줌마로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았어요. 미희가 되자고 생각했을 때 ‘엄지원처럼 안 보였으면 좋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죠. 아줌마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닌,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면 함께한 많은 배우들에게 미안한 일이죠.”
온 몸을 다해 열연했지만, 그 공을 설경구와 아역배우 이레에게 돌렸다.
“설경구 선배는 워낙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원래 작업을 해보긴 했지만, 이번 영화를 하면서 배우로서 더 좋아하게 되고 존경하게 됐죠. 제가 미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잘 아는 배우이신 것 같아요. 빛나는 사람들을 잘 받쳐줄 줄 아시고요.”
그는 이레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엄지원은 “워낙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작품에 먼저 출연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 대본 상황도 많이 이해하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성숙한 아이다”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 가장 중요한 건 믿음과 의리
그동안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 엄지원이지만, 이번 영화에 대한 애착은 상당히 강했다. 계산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연기했기에 후회는 없다.
“저는 아직 경구선배처럼 단단한 반석 위에 오른 사람은 아니잖아요. 처음으로 하는 엄마 연기였고, 진심을 다해서 연기했어요. 정말 선한 마음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작업했죠. 계산하지 않고 출연을 결정한 만큼 뿌듯해요. ‘소원’의 배우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죠.”
오래 전부터 엄지원은 연예계에서 평판이 좋은 배우로 알려져 있다. 사람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언제나 의리를 앞세우는 그. 하지만 이 같은 장점이 오히려 독이 될 때도 있다.
“‘소원’ 시사회가 끝났을 때 친한 감독님에게 문자가 왔어요. ‘이제는 남들한테 이용 당하지 말고 네 길을 쭉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요. 어떤 선택이든 항상 의리나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배우 엄지원이 아닌 인간 엄지원의 라이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결국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인데, 그런 의미로 봤을 때 이기적으로 사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었으면 해요.(웃음)”
사진 황지은 기자 hwangjieun_@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