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지난 3월 24일 충남 천안의 한가로운 도심 한복판에서 정적을 찢는 총성이 울려퍼졌다. 20대 여성을 납치해 나흘간 끌고 다니며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아 온 범인 A(47)에 의한 총성이었다. A는 잠복 중인 경찰에 발각되자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10㎞ 가량을 도주하다 엽총 3발을 발사하며 저항했다. 누군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비상이 걸린 경찰은 총력 대응으로 A 검거에 총력을 쏟았다. A의 도주로를 차단하고 권총과 테이저 건으로 응수했다. 죽기살기로 범인 검거에 나선 경찰은 결국 대치 수시간만에 범인을 붙잡았다. 검거 과정에서 경찰차량 등이 파손되기도 했지만 별다른 인명 피해는 없었다.

만화영화 주제가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것은 배트맨도 수퍼맨도 아니다. ‘슈퍼 히어로’는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엔 다만 경찰로 불리는 ‘이름없는 영웅’들이 있다. 그리고 매년 15.4명의 경찰이 직무수행 중 목숨을 잃고 있다.

21일은 올해로 68주년을 맞는 ‘경찰의 날’이다. 경찰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출범했지만 경찰의 날은 미(美) 군정으로부터 경찰 운영권을 이양받은 1948년 10월 21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날 이전의 경찰역사는 한마디로 ‘암흑기’였다. 1910년 6월 일제의 테라우치 마사타케 통감과 박제순 총리대신이 경찰권 위탁각서를 작성하며 헌병경찰제도가 시행됐다. 일제는 일반 치안유지 업무를 헌병에게 맡기며 강압적인 무단 식민통치로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오래된 습속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군사독재 정권이 이어지며 경찰엔 ‘권력의 시녀’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군 고문 치사사건으로 경찰 조직에 대한 지탄은 극에 달했다. 당시 서울대학교 재학생이던 박종철은 경찰에 불법체포돼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공안당국은 조직적 은폐를 시도했고, 이후 진상이 밝혀지며 6월 항쟁의 불꽃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경찰대학에 다녔던 한 경찰 고위간부는 “부끄러웠다. 대학생이자 예비 경찰로서 당혹스럽고 참혹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기 위한 경찰의 자정 노력은 이후 본격화했다. 경찰대학 1기 출신인 이병무 총경은 6월 항쟁 이듬해인 1988년 1월 ‘경찰 중립화 선언’을 주도했다. ‘경찰 발전과 민주화를 위한 참회’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에게 “언제까지 경찰을 정치의 시녀, 정권의 도구로 이용하시겠습니까”라고 공개적으로 ‘돌직구’를 던졌다. 잠들어있던 경찰의 양심을 깨우는 한 마디였다.

민주화가 자리를 잡으며 또 한번 경찰은 변모했다. 논란이 없지 않지만 30여년 전과 비교할 때 경찰의 인권 감수성은 놀라울 정도로 성숙했다.

하지만 불편부당한 경찰, 살아있는 법집행의 화신으로서의 경찰은 여전히 국민에게 낯설다. 특히 ‘국정원 댓글’ 사건을 둘러싼 경찰의 축소ㆍ은폐 수사 의혹은 경찰 신뢰에 또다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조직 내부에서 조차 경찰신뢰는 도전받는다. 일선 경찰 2명 중 1명은 수뇌부의 정치 중립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 유대운 의원이 경찰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찰 수뇌부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관련 ‘잘 지키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53.2%를 차지했다. ‘잘 지키고 있다’는 응답은 12.7%에 그쳤다.

치안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경찰, 국민을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이름없는 영웅’들은 신뢰의 위기 속에서 고개 숙인 경찰이 되고 만다. 그들이 치안현장에서 흘리는 피와 땀도 물거품이 되고 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일은 숭고하고 보람되다. 하지만 지금 일선 경찰들은 제대로 된 국민의 감사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느냐, 정치 경찰로 추락하느냐, 경찰은 다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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