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몽마르뜨르’ 문래동예술창작촌 가보니

홍대·대학로 비싼 임대료 피해 작가들 모여들어 작업실 100여곳·작가 200여명 예술 활동 도심 공장지역과 문화 결합 독특한 개발사례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본인의 작업실을‘ 공장(the factory)’이라고 불렀다. 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 병, 달러 지폐, 유명인의 초상화 등을 실크스크린 판화 기법으로 제작하며‘ 대량생산’했기에 그런 애칭을 붙였다고 한다.

2013년 서울에서도 공장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문래예술창작촌 작가다. 신도림~문래~영등포역 사이 문래동3가와 4가엔 철강공업사 단지가 있다. 빼곡한 아파트촌 사이 섬처럼 떠있는 공업사 단지는 이질적이기만 하다. 낮이면 쇳덩이를 갈고, 두드리고, 붙이는 소리가 귀를 찌른다. 연마할 때 튀는 불꽃과 쇳가루는 덤이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적막만 가득하다. 거기에서 예술가의 예술혼이 불꽃을 튀긴다.

밤의 적막을 벗삼아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일부 비어있는 공장에 둥지를 튼 것은 2003년의 일이다. 회화, 설치, 조각, 디자인, 사진 등 시각장르를 비롯해 춤, 마임, 연극, 퍼포먼스 등 공연예술가와 비평, 문화기획 등 다양한 문화활동가가 아틀리에 집중 지역인 홍대와 대학로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 하나둘 모인 지 벌써 10년이다. 서울문화재단 산하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문래예술공장은 현재 문래예술창작촌의 작업실은 100여곳, 작가는 200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장지대에 들어선 덕분에 문래예술창작촌은 뉴욕 브루클린이나 베이징 다산쯔 798특구에 비견되기도 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미 슬럼화한 폐 공장지대에 예술인이 이주한 외국의 사례과 달리 문래동에선 아직도 경제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문래동 경제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 비하면 크게 쇠락했지만, 소규모 기계금속 관련 업종은 여전히 건재하다. 예술가들이 집성촌을 이루어도 상업화가 쉽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안공간 ‘정다방 프로젝트’의 공동대표 박무림(47) 씨는 “옛 공장 자본이 빠져나가고 재개발 등 부동산 자본이 들어오기 전, 그 빈 공간에 절묘하게 예술이 자리잡았다.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공간”이라며 문래동의 독특함을 강조했다.

옛 주물공장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포’에서 개인전을 여는 작가 최두수(41) 씨는 “이곳에 온 순간, 미래를 보았다. 서울의 역사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공간, 경제생활과 예술이 맨살을 내밀고 있는 공간이다. 예술이 진정으로 삶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치켜세웠다.

문래동이 예술가의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임대료와 건물주의 ‘무관심’이다. 평균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이면 15평 작업실을 얻을 수 있다. 놀고 있던 공장을 임대하는 건물주는 ‘부서지지 않을 수준’의 리모델링은 용납해준다. 다만 열악한 화장실이나 물이 새는 등 불편사항은 세입자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대신 페인트칠을 하고, 조형물을 달아도 뭐라 하지 않는다. 시끄럽게 작업해도 누구 하나 터치하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또한 예술가에게 철공소는 신선한 자극이다.

2년 전 홍대에서 작업실을 옮겼다는 노정주(33) 씨는 “마주치는 일상이 다르다. 내가 알던 서울이 아니라서 매일 매일이 새롭다”고 말한다.

서울시도 적극 나섰다. 지난 6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문래동에 현장 시장실을 열고 지역 소상공인, 예술인 앞에서 문래예술창작촌 활성화를 약속한 바 있다. 문래예술공장에서는 작가와 철공소 대표를 상대로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실시, 지원방안을 검토 중이다.

예술가와 철공소의 공존은 아직은 어색하고 기묘하다. 겉으로 볼 때는 허름하지만 사실 몇억씩은 가게에 깔고 있는 ‘철공소 사장님’이 볼 때 예술가는 해가 중천에 떠야 나오는 백수이고, 예술가는 나이 지긋한 ‘공업화의 산증인’을 대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철을 주재료로 하는 조각가 등 예술가가 모여들면서 주민과 예술인, 철공소와 스튜디오가 공생하는 법을 하나하나 터득해가고 있다. 문래예술창작촌은 공업지역과 예술이 결합한 독특한 도시개발의 한 전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