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알음 가격을 소비자에 전가하는 경우 많아져”
배달비 줄줄이 인상…통계청, 외식 배달비 지수 발표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배달비 얼마까지 가능?”
최근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상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배달비를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의 게시물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에 각종 서비스에 붙는 수수료마저 늘어나면서 ‘배달비 신경 안 쓰고 배달 시키면 부자’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최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음에도 외식·여행·서비스 등 부문의 물가가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는 오히려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발간한 ‘2024 세계대전망’에서 “내년엔 ‘스텔스플레이션(Stealthflation)’이 심화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비밀리에 적진에 침투하기 위해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하는 스텔스기처럼 소비자물가지수나 생산자물가지수에 잡히지 않는 방식의 물가 상승이 이뤄질 것이란 이야기다.
이코노미스트는 스텔스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로 호텔이나 리조트·항공사에서 체크인 수수료, 식당에서 받는 포장비, 차량 공유앱에서 받는 수수료 등을 꼽았다. 국내에서도 식당에서 ‘팁’을 은근슬쩍 강요하거나, 배달비를 올려 받는 등 행태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달부터 동탄1신도시 배달대행 플랫폼의 기본 배달비가 4500원으로 오른다. 의정부에 위치한 일부 배달대행업체 또한 3km에 4000원이었던 기본 거리를 2km축소해 사실상 배달비를 인상했다.
병원 진료를 예약할 수 있는 앱인 ‘똑닥’도 9월부터 월 1000원의 유료 서비스로 전환되면서 의료비 부담 우려 논란 뿐 아니라 환자 접근성과 선택권을 없앴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평소 수수료가 붙는 택시는 절대 타지 않는다는 20대 A씨는 “배달, 병원 진료 예약, 택시 등 당연하게 이용해왔던 서비스에 언제부터 수수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이 무수히 생기는데, 시장 질서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은행이나 통계청은 상품의 중량에 따른 가격을 측정해 기업이 가격 인상 대신 소비자 몰래 제품의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물가 지수에 반영하고 있지만, 서비스에 추가적으로 붙는 수수료는 따로 자료를 모으지 않고 있다.
통계청은 우선 인상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배달비 관련 지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통계청은 이달 29일부터 소비자물가지수와 함께 ‘외식 배달비 지수’ 공표를 시작한다. 기존 외식물가 지수만으로는 음식 가격이 오른 것인지, 배달료가 올랐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수수료 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 미국에서는 일부 서비스 수수료를 ‘정크 수수료’(Junk Fees)로 정의하고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미국 주요 항공사 탑승시 13세 미만의 어린 자녀와 옆 좌석에 앉기 위해 추가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규정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는데, 이후 미 교통부와 항공사들은 서면 합의를 통해 해당 수수료를 없애기로 했다.
고물가 장기화에 공급망 차질 등 기업의 원자재 부담이 여전한 상황에서, 향후 소비자가 알게 모르게 서비스나 재화 가격에 수수료를 붙여 원가 부담을 전가하는 스텔스플레이션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체감 물가 상승을 표현하는 용어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엔 미국 CNN에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무실로 돌아온 직장인들의 점심값 비용이 늘어나는 현상을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이라고 규정했다.
최근엔 월스트리트저널(WSJ) 저널에서 스포츠 경기를 비롯해 오락·공연·휴가 비용이 상승하는 상황을 ‘펀플레이션(funflation)’이라고 표현했다. 재미(fun)와 물가상승(inflation)을 조합한 것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공연예술관람료는 1년 전보다 6.3% 뛰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등 지난 상반기 티켓 판매액 상위 5개 공연의 객석 최고가는 평균 19만원 선이다. 노래방과 PC방 가격 또한 1년 새 각각 6.9%, 5.3% 뛰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스텔스플레이션의 경우 고객들이 물가가 어디서 오르는지 모르게 되면서 실질적으로 가격의 소비자 이전이 많아졌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상당히 힘이 들고,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자영업자가 많기 때문에 원가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이는 통화정책으로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면서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재고를 확보하는 한편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가 가능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식료품 가격 인상 자제를 당부하고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