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L 활약에 ㈜두산 전자 매출 17.4%↑ 전망
차별화된 기술력 앞세워 엔비디아 파트너사로
두산 2000년대 초반부터 CCL 생산 시작
두산에너빌·밥캣 의존도 낮추고 소재 사업 강화 속도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한영대 기자] 두산의 반도체·첨단 소재 사업이 엔비디아발(發) 훈풍에 힘입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주력 제품인 동박적층판(CCL)이 엔비디아 인공지능(AI) 반도체에 공급되면서 매출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새로운 AI 반도체에도 두산 CCL이 공급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두산은 반도체·첨단 소재 경쟁력을 강화해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두산 CCL, 엔비디아 새 AI 반도체에도 공급 유력”
17일 ㈜두산에 따르면 전자BG(비즈니스그룹) 사업 부문의 올해 매출액 전망치는 8830억원으로 지난해(7520억원)보다 17.4% 증가했다. 올해 3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22.3% 늘어난 2496억원을 기록했다. ㈜두산 전자BG 사업 부문은 반도체, 통신장비 등에 들어가는 소재를 생산한다.
주력 제품인 CCL이 AI 시장 성장으로 불티나게 팔리면서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구리를 얇게 편 동박을 여러 장 겹친 CCL은 인쇄회로기판(PCB) 핵심 부품으로, 반도체 칩과 메인보드를 연결하고 보호한다. 기존 통신장비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성능을 향상시키는 AI 반도체에도 CCL이 필요하다.
㈜두산 전자BG의 CCL은 엔비디아에 공급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엔비디아는 그동안 대만 기업인 EMC로부터 CCL를 주로 공급받았다. 하지만 두산 CCL의 우수성을 검증하고 난 뒤, 지난해 두산을 또 다른 CCL 공급업체로 선정했다.
㈜두산 전자BG 실적은 고공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반도체 등 전방 산업 성장으로 CCL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인포메이션은 전 세계 CCL 시장 규모가 2022년 150억8000만달러(21조원)에서 2028년 40.6% 성장한 212억달러(30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엔비디아와의 관계가 지속될 가능성이 큰 점도 실적 상승에 청신호로 작용할 전망이다. CCL은 재료인 레진과 보강기재의 배합 비율에 따라 품질 경쟁력이 좌우된다. 두산은 독자적인 배합 비율을 확보, 차별화된 CCL를 양산하고 있다. 대표 제품인 연성동박적층판(FCCL)은 20만회 이상 접었다 펴도 형태 변형이 일어나지 않고 접착성이 우수하다. 고부가가치 CCL이 필요한 엔비디아 입장에서 두산은 최적의 파트너사인 것이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두산 전자 BG는 엔비디아 AI 반도체인 블랙웰 모델의 단독 공급에 이어 후속 모델인 루빈까지 경쟁사를 제치고 CCL을 단독 공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신규 AI 반도체를 꾸준히 선보이기 위해서는 EMC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두산의 CCL 고부가가치 제품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두권에 들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며 “기술력을 계속 유지한다면 두산은 엔비디아의 확실한 파트너사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50년 역사 ㈜두산 전자 BG…연매출 1조 목표
두산은 ‘중공업 기업’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지주사인 ㈜두산은 반도체·첨단 소재는 물론 유통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은 단연 반도체·첨단 소재 사업이다. 올해 3분기 기준 ㈜두산 자체 사업 매출에서 전자BG 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훌쩍 넘는다.
역사도 오래됐다. ㈜두산 전자BG 사업 부문의 모태인 한국오크공업은 1974년 설립됐다. CCL은 2000년대 초반 전북 익산 공장 준공 이후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했다. ㈜두산 전자BG 사업 부문은 CCL 외에도 전장 소재인 PFC, 5G 안테나 모듈 등을 제품군으로 보유하고 있다.
㈜두산 전자BG 사업 부문 목표는 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지난해 반도체 시장 침체 여파로 매출이 7520억원까지 하락했지만, 2022년에는 전방 사업 호황으로 매출 9504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전방 산업 반등과 같은 호재가 이어진다면 이른 시일에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두산 전자BG의 활약은 그룹 차원에서도 고무적이다. 두산은 원자력 발전 사업을 하는 두산에너빌리티, 소형 건설기계를 생산하는 두산밥캣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올해 3분기 기준 그룹 전체 매출에서 두산에너빌리티(자회사 두산밥캣 포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8%이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협동로봇을 주목하고 있지만, 협동로봇 사업을 하는 두산로보틱스 연간 매출은 500억원대에 불과하다.
두산은 협동로봇 사업을 키우기 위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두산밥캣을 편입시킨 뒤 합병하는 방안을 한때 추진했지만, 소액주주들의 반발로 좌절됐다. 현재는 두산에너빌리티를 인적분할 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하는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 육성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두산 전자BG 활약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룹은 경영 측면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신사업 육성에 필요한 자금을 넉넉히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전, 건설기계 사업이 부진할 때 반도체·첨단 소재 사업이 받쳐주는 구조를 구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두산은 올해 7월 사업구조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그룹 3대 축으로 클린에너지와 스마트머신, 그리고 첨단소재를 꼽았다.
두산은 반도체·첨단 소재 사업 경쟁력을 강화해 AI 시장 성장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낸다는 전략이다. 특히 수요가 높은 고부가가치 반도체·첨단 소재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지난해 기준 ㈜두산 전자BG 사업 부문에서 고부가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대이다. 두산은 이 비중을 70%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올해 9월에는 FCCL 생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북 김제시에 FCCL 공장을 준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