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미국 소노마)=주소현·김상수 기자, 안경찬 PD] “우리만 열심히 분리배출해 봤자 소용없다”
해외에서 커다란 쓰레기통에 음식물과 일반쓰레기, 재활용품을 구분 없이 버린다는 통념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비교적 인구가 적고, 그에 따라 플라스틱 오염에 책임도 적을 한국만 굳이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려 애쓸 필요 없다는 반발도 크다.
실제 현장에서 접한 미국의 쓰레기 배출은 한국보다 단순했다. 그러나 재활용 결과는 사뭇 달랐다. 종이면 종이, 플라스틱이면 플라스틱으로 재질 별로만 구분하는 게 아녔다. 페트나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등 세부 재질 별로, 심지어 색깔 별로도 분류했다.
쓰레기 배출의 부담은 적은데도 비슷한 수준으로, 오히려 더 쾌적하게 재활용할 수 있는 비결. 한마디로 요약하면 “단순하게, 그러나 깨끗하게”다.
지난 9월 5일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의 소노마 카운티에 위치한 리콜로지 소노마 마린(Recology Sonoma Marine). 약 7400㎡ 부지에 펼쳐진 재활용 선별장이다.
리콜로지는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주에서 개인 250만명 이상, 상업시설 10만곳 이상의 쓰레기를 수거해 선별하는 회사다. 26개의 지점을 운영하는데, 소노마 마린점은 이 중 하나로 7개 도시를 담당한다. 리콜로지는 가정, 상업 시설, 공공 장소 등에서 쓰레기를 수거해 재활용 처리업체에 넘기는 역할을 맡았다. 종이, 플라스틱, 금속, 유리 등 다양한 종류의 재활용 품목을 선별 및 분리한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 시끄러운 기계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는 한국의 재활용 선별장과 다르지 않았다. 단박에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건 냄새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선별장 내외부를 둘러보는 데 무리가 없었다. 별도의 세척 공정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온갖 쓰레기를 한데 모아 펼치고 분류하는 선별장에서 악취가 나지 않는다는 건, 쓰레기를 내놓을 때부터 이물질 없이 잘 헹궈뒀단 의미다. 리콜로지는 “이처럼 효과적인 쓰레기 수거를 위해 주민 교육을 매우 중요시한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쓰레기를 버리려면 해당 지역에서 지정된 수거업체 중에 시민들이 각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재활용 품목도 마찬가지. 한국처럼 공짜로 배출하는 게 아닌, 수거업체가 비용을 고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같이 수거해가는 식이다.
신청한 소비자에 한해 수거업체는 전용 쓰레기통을 제공한다. 쓰레기통은 매립(Landfill), 퇴비(Compose), 재활용(Recycle), 3가지로만 구분하고, 재활용 쓰레기통 안에 캔과 병, 플라스틱, 종이 등 재활용되는 모든 쓰레기를 넣는다.
대신 쓰레기를 품목 별로 담지 않거나 오염된 쓰레기까지 넣을 경우, 수거업체가 쓰레기통에 경고 문구를 부착한다. 심한 경우 수거해가지 않는다. 즉, 수거업체가 쓰레기를 제대로 버렸는지 일대일로 검사한다는 이야기다. 로건 하비(Logan Harby) 리콜로지 소노마 마린점 선임 매니저는 “수거하기 전에 쓰레기를 제대로 버렸는지 불시 확인한다”며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고칠 수 있도록 피드백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주민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해당 학교에 방문하고, 선별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축제에 적극 나서는 식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리콜로지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로웨이스트샵’까지 운영 중이다.
리콜로지가 이처럼 쓰레기 수거 단계부터 분리배출에 몰두하는 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브라이언 팝웰(Brian Popwell) 리콜로지 소노마 마린점 웨이스트제로 담당자는 “시민들이 플라스틱, 종이, 금속 등을 올바르게 분리하고 세척하는 습관을 지니면 추가로 세척 공정을 둘 필요가 없어 효율이 올라간다”며 “재활용 품질을 높일 수 있고, 자원 절약과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광학선별기는 재활용품의 모양과 재질은 물론 색까지 구별한다. 가령 종이 중에서 두꺼운 판지와 얇은 종이를 나누는 식이다. 플라스틱의 경우 물이나 음료병으로 쓰이는 페트(PET), 샴푸나 세제를 주로 담는 고밀도폴리에틸렌(HDPE)까지 구분한다.
미국 시민들이 재활용 쓰레기통에 모든 재활용품을 한꺼번에 담아 버려도 됐던 까닭이다. 선별장 내에서 자체 선별이 가능한 만큼 시민들에게 분리배출의 부담을 지우지 않았다.
로건 하비 매니저는 “너무 자세한 요구를 하면 시민들이 잘 지키지 않을 것”이라며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식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리콜로지는 재활용 품목을 처리업체에 판매, 수익을 얻는다. 시민으로부터 받는 요금과 이 판매 수익이 리콜로지 주된 수입원. 그러면서 정부의 보조금 등이 없이 자생적으로 기업이 운영된다. 쓰레기 재활용의 순환 경제다.
깨끗한 품목만 엄선하니 당연히 재활용 양 자체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시민 입장에선 어차피 일반 쓰레기든 재활용쓰레기든 쓰레기 총량에 따라 과금되니 상관없다.
이 같은 경영 방식으로 리콜로지는 재활용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주의 평균 재활용률은 65~66%선이지만, 해당 지역에서 리콜로지를 이용하는 가정의 재활용률은 75~99%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재활용은 무료 수거다. 그러다 보니, 비용이 수반되는 일반 쓰레기 대신 가능한 한 재활용으로 배출할 요인이 된다. 음식이 묻은 플라스틱 용기를 예로 들면, 리콜로지 시스템에선 당연히 일반 쓰레기로 버리게 되고, 한국 시스템에선 재활용으로 배출하기 쉽다. 리콜로지의 재활용품이 잘 선별되는 이유다.
현실적으로 재활용업체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리콜로지는 ‘위시사이클링(Wishcycling)’을 지양한다. 위시사이클링이란 실제 재활용되는지 확신할 수 없더라도 재활용되리라는 희망으로 재활용 쓰레기에 집어넣는 행위를 가리킨다.
줄리아 망긴(Julia Mangin) 리콜로지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위시사이클링이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재활용 선별 체계에 부담을 주는 오염을 일으킨다”며 “리콜로지는 시민들이 어떤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보도록 권장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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