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은 살자”, “모르는 것은 말하지 말라”며

소속 병사 사망 조사 무마하려던 중대장 ‘무죄’ 판결에

군인권센터 “국가의 책임 방기했다”며 재판부 비판

[헤럴드DB]
[헤럴드DB]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군인권센터가 ‘고동영 일병 사망 사건’과 관련된 중대장이 무죄를 선고받자 ‘유족과 제보자를 무시한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규탄했다. 고 일병은 군에서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장은 고 일병의 사망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부대 구성원들에게 입단속을 시켜 사건을 은폐하려는 혐의로 기소됐지만 서울고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30일 군인권센터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재판부의 ‘중대장 2심 무죄 판결’을 비판했다. 임 소장은 “진실을 찾아 헤맨 유족과 제보자의 용기를 무시한 판결”이라며 “국가는 진실을 조사하고 확인할 책무를 져버렸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남성민)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된 중대장 A씨에게 1심에 이어 2심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건을 은폐하라는 발언을 할 때 40∼50명의 병사들이 함께 있었다는 진술이 있었지만 이러한 증언을 한 사람 외에 피고인의 말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며 “현재 피고인과 업무적 관계가 없는 간부 병사들 17명도 피고인이 그런 발언을 한 적 없다는 취지로 사실 확인을 해줬다”고 했다.

임 소장은 이날 성명에서 “재판부는 제보자 B씨의 진술과 피고인 중대장이 모아온 다른 부대원들의 진술이 상이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는데, 진술이 상이하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여러 증거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 절차를 꼼꼼히 밟지 않고 피고를 위해 진술해준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제보자의 말을 사실상 거짓말인 것처럼 결론을 내버렸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임 소장은 “A씨는 고 일병이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 탈모까지 겪은 사실을 알면서도 고 일병을 방치했다”며 “이는 그동안 고 일병의 유족이 직접 진실을 찾아다니며 확인했던 점”이라고 했다.

이 사건은 고 일병이 사망한 지 7년 만인 지난해 해당 부대 소속 부사관 B씨가 A씨의 은폐 의혹을 군인권센터에 제보해 세상에 알려졌다. 제보자 B씨는 지난 2015년 5월 27일 소속 부대원인 고 일병이 휴가 중 극단 선택을 하자 A씨가 간부들을 집합시키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는 것만 적고 모르는 것은 말하지 말라’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고 일병의 유족은 이러한 B씨의 제보를 토대로 지난해 5월 A씨를 고소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부대 간부들은 고 일병을 꾸짖은 적은 있지만 구타나 욕설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고 일병의 유서에는 폭언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직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