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조건 악화로 실질 국민총소득 0.7% 축소
국제유가 상승세에 수출·수입 조건 악화 전망
석 달 만에 물가상승률 다시 3% 대
[헤럴드경제=김현경·문혜현 기자] 우리 경제가 2분기 가까스로 0.6% 성장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면서 나타난 ‘불황형 성장’이다. 실제 고금리에 따른 이자부담 등으로 1분기 성장을 밀어올린 민간소비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이면서 정부소비 성장률은 외환위기 직전이던 1997년 이후 최저치다. 민간과 정부 모두 지갑을 닫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난달 물가마저 석달만에 3%대로 오른 것으로 집계되면서, 소비는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유가가 고개를 들면, 동절기 물가 부담도 더 커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원/달러 환율에 따른 수출입교역조건도 낙관적이지 않다. 2분기 우리 경제가 역성장을 피했다고는 하지만, 국민총소득(GNI)는 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하반기 경제 성적도 낮아질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다.
민간·정부 소비 줄고 건설 생산·투자 부진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2023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계절조정, GDP)은 1분기보다 0.6% 성장했다. 7월 25일 발표된 속보치와 같다.
1분기(0.3%)에 이어 2분기까지 연속 플러스(+) 성장이지만, 부문별로 살펴보면 내용이 좋지 않다. 설비투자를 제외한 모든 부문이 뒤로 물러났다. 1분기 성장 반등을 이끈 민간소비가 의류 및 신발 등 준내구재와 음식숙박 등 서비스 소비가 줄면서 0.1% 감소했고, 정부소비도 건강보험급여 등 사회보장 현물 수혜 위주로 2.1%가 줄었다. 이 같은 정부소비 성장률은 1997년 1분기(-2.3%) 이후 최저치다.
건설투자도 토목건설 부진 등으로 0.8% 축소했다. 설비투자는 운송장비 감소에도 기계류가 늘며 전체적으로 0.5% 증가했다.
민간과 정부 모두 소비가 부진했는데도 GDP가 성장한 것은 순수출 증가 덕이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면서 나타난 것이다. 실제 2분기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 등이 늘었으나 석유제품 등이 줄면서 0.9% 감소했다. 수입은 원유, 천연가스 등을 중심으로 3.7% 감소했다.
이에 따라 성장기여도를 살펴보면, 순수출(1.4%포인트)와 설비투자(0.1%포인트)를 제외하고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사실상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든 것 말고는 성장을 밀어올릴 부문이 없었단 얘기다.
특히 2분기 실질 GNI는 실질 GDP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질 국외순수취요소소득(14조9000억→10조3000억원)이 줄고 교역조건 악화로 실질무역손실(-32조2000억→-34조원)이 확대돼 전분기보다 0.7%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2분기(-0.9%)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이에 대해 최정태 국민계정부장은 “올해 1월 시행된 해외 자회사 배당금 입금 영향으로 1분기 명목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데 따른 기저효과”라며 “교역조건 악화는 수출품 가격보다 수입품 가격이 더 상승한 영향이다. 원유 가격에 비해 반도체 가격이 더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투자 전망에 대해선 “설비·건설투자 관련 지표들은 조금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건설 투자의 경우 7월 중 주택 건물 건설을 중심으로 건설이 증가하고 주택 거래량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면서 “다만 신규 착공 감소세와 토목 건설의 부진한 흐름이 등이 이어져 3, 4분기 건설 투자 방향성은 현재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가 다시 3%대 “상저하고 쉽지 않다”
민간과 정부 모두 지출을 줄이는 가운데 물가 마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폭우·폭염과 유가 기저효과 감소로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석 달 만에 3%대로 올라섰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2023년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2.33(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3.4% 상승했다. 올해 4월 3.7%를 기록한 뒤로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특히 석유류는 11.0% 하락했는데, 7월까지 계속된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전달(-25.9%)보다 하락 폭이 축소됐다.
이에 사실상 하반기 경제 반등이 나타나는 ‘상저하고’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소비 감소는 상저하고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내수의 경우 추석 연휴 이후 반등할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우리 경제 전망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 경기에 관해선 “최근 LH 사태와 부동산PF 불안,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공급 측의 애로 요인이 굉장히 많았다”며 “이에 건설사들이 위축을 겪고 있는 것이고, 하반기 들어 금방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저하고는 물가가 안정되고 미국의 금리 인하가 이르면 4분기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란 가정 하에 나온 것”이라며 “지금 미국은 금리를 낮출 요인이 없다. 엇박자가 심해져 미국은 호황임에도 다른 나라가 부진한 탈동조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중국 상황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안 교수는 “미국의 고금리 정책을 다른 나라가 버티지 못할 수 있다. 중국 위기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위기 관리 기조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교수도 “중국의 침체가 얼마나 갈지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며 “국내에서도 예산을 축소하고 긴축재정에 돌입하는 상황에서 금융시장·건설경기가 안정화되는 부분이 받쳐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