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구조도 도입 이후 거버넌스 운영 전반 살필 듯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한국형 책무구조도’ 도입을 이끌어낸 금융당국이 이번엔 지배구조(거버넌스) 선진화에 나선다. 그간에는 임원들의 책임을 명확히 해 내부통제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이사회 구성부터 지배구조 실태를 면밀히 파악해 지주 회장 중심의 ‘참호구축’ 문제를 손질할 전망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연내 금융사들의 거버넌스 선진화 작업에 돌입할 전망이다. 지난달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책무구조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 작업이 끝나면 거버넌스 정비에 나설 것을 실무진에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김주현 위원장이 내부통제에 이어 거버넌스 전반을 정비하자는 주문을 (금융위 관련 국에)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따라 이사회 구성부터 각 소위원회 운영현황 등 전체적으로 거버넌스에 대한 정비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금융위는 금융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준비해왔으나 이를 미룬 바 있다. 은행들의 ‘이자장사’가 극에 이르자 영업 관행·제도 개선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었다. 여기에 내부통제 제도개선 TF가 출범하면서 중복되는 부분을 줄이고, 업무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차원도 있었다. 수개월에 걸친 내부통제 개선 작업을 통해 책무구조도 도입 등 가시적인 과제가 확정된 만큼 이제부턴 한발 더 나아가 거버넌스 전반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동안 은행, 지주사를 둘러싼 지배구조 선진화 필요성은 늘 제기돼왔다. 은행처럼 소유가 분산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우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경쟁자를 밀어내거나 사외이사나 우호주주를 포섭하는 방식으로 ‘참호구축’을 일으킬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횡령이나 불완전판매 등 각종 내부통제 사고를 일으키고도 CEO가 연임하거나, 차기 후보자 선정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이 주인 없는 회사, 소유분산 기업의 대표격으로 은행을 거론하며 개혁을 주문한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전직 금융지주회장 A씨는 “회장이나 사외이사 또한 임추위를 통해 선임되지만 후보 풀(pool)이 바뀌는 과정에서 CEO 입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게 사실”이라며 “헤드헌터 업체를 쓰더라도 요청하는 금융사의 입김에 맞춰 꾸릴 수 밖에 없으니 외부에서 지적하는 참호구축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거버넌스 선진화 작업에 들어갈 경우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포함한 이사회 구성 과정은 물론 운영 절차 등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해 처음 거버넌스 문제가 부각됐던 시점이 지주 회장 임기 종료와 맞물리다보니 주목을 받았었는데, 사실 금융지주 거버넌스의 투명화 및 선진화는 수년간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부분”이라며 “거버넌스 전반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제도나 관행 등을 금융당국 간 의견을 조율하면서 살펴보고 관련 작업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