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윤현종 기자] # 2006년 8월, 중국 상하이의 한 순환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1명이 죽고 2명이 다쳤습니다. 사고를 낸 건 당시 41세였던 기업가 린(林)모씨였습니다. 그는 경영 중인 대기업만 3개, 개인재산은 1억 위안(177억원가량)에 달하는 부호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고는 자칫 엉뚱한 사람이 책임질 뻔했습니다. 현장에도 없었던 린씨 개인 운전기사 천(陳) 모씨였습니다. 린씨가 사고직후 천씨를 불러 자신의 피묻은 옷을 갈아입혀 사고가 난 곳에 대신 보낸 것입니다. 물론 처벌을 대신 받는 대가가 있었죠.

결국 린씨의 행각은 경찰에 덜미를 잡혔고, 그는 자수합니다. ‘주인님’의 죄를 대신 살 뻔했던 천씨는 나중에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난 그(린 사장)에게 밥을 얻어먹고 산다…(그의 지시를 거부할) 방법이 없었다”

중범죄자에겐 사형을 집행할 정도로 사법시스템이 엄격한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곤 믿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있습니다. 당연히 불법이기에 암암리에 퍼져있죠. 죄를 짓고 감옥에 가야 할 본인 대신 수감될 사람을 돈으로 사는 부자들입니다. 일종의 ‘수감 알바’를 쓰는 겁니다.

중국에선 이런 일탈 행태를 가리킨 단어도 있습니다. ‘딩쭈이(頂罪)’라고 합니다.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단 뜻입니다. 그렇게 법정에 선 대역은 ‘티선(替身)’이라고 부릅니다.

중국 부자들의 이런 일탈행위가 비단 8년 전 일만은 아닙니다. 잊혀질 만하면 세간에 오르내리며 대륙판 유전무죄(有錢無罪)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후빈(胡斌) 사건’입니다. 2009년 5월, 스무살 짜리 부호2세 후빈은 자신의 미츠비시 승용차를 타고 항저우 시내 도로를 질주하다 한 보행자를 치여 숨지게 합니다. 사망자는 차와 부딪힌 후 18미터나 튕겨져 나갔다고 합니다. 사고 당시 차의 속도를 짐작케 하죠. 그러나 후씨는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웃으며 담배만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집니다. 게다가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후씨 승용차의 사고당시 속도를 실제보다 줄여 발표합니다.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그때 더 큰 문제가 제기됩니다. 법정에 나타나 형을 선고받던 피고가 사고를 낸 당사자가 아니라 후빈 측이 고용한 대역이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실제 무면허 상태에서 차를 몰다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여 죽인 한 부자는 8000달러에 수감 알바를 고용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법당국은 후빈의 대역 의혹을 부인합니다. 후빈도 직접 나서 “내가 출두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후 여론은 가라앉았지만, 이 일은 여전히 중국인들 뇌리에 박혀있습니다.

2012년엔 보시라이 전 충칭(重慶) 당 서기의 부인이자, 재산 80억위안(1조4000억원)을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진 구카이라이(谷開來)도 영국인 사업가 살해 혐의로 열린 재판에서 대역 고용 의혹을 받습니다. 해외에 사는 일부 중국인들은 법정에 선 여성은 구카이라이가 아니라 자오톈사오라는 이름의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결국 중국 당국은 검색어 차단으로 대응합니다. 당시 ‘구카이라이 대역’을 검색하면 ‘관련 법에 의해 검색 결과 일부가 나오지 않는다’고 떴습니다.

왜 이런 논란은 끊이지 않을까요. 돈이면 뭐든 된다는, 중국 부자들의 ‘천박한’ 인식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란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합니다. 아울러 이 나라 왕조시절부터 있었던 인습이 부활했단 분석도 있습니다.

대만에 있던 선교사 조지 맥케이는 1895년 이런 행태를 목격하고 “(내가 본) 이 결백한 사람들은 이 사건과 아무 관련 없었지만 6주간 대신 옥살이를 하고 돈을 받았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19세기 중국에서 수감대역이 받은 돈은 하루에 17파운드였습니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000달러정도 입니다. 당시 죄를 저지른 부호들은 일당 200만원의 거금을 주고 대역 수감자를 산 셈입니다. 심지어 사형을 대신 당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돈 받고 대신 죽어준 ‘알바’가 있었단 얘기입니다.

물론 이는 공산주의 시절 잠시나마 자취를 감춥니다. 그러나 중국은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 문화가 빠르게 퍼지면서 단시간에 큰 돈을 만진 사람도 생깁니다. 상위 1%의 돈이 나라 곳간 50%를 차지할 정도가 됐습니다. 소위 ‘천민자본주의’ 분위기가 급격히 퍼진 배경입니다. 돈이면 면죄부도 살 수 있는 환경이 다시금 조성된 것입니다.

중국 못지 않게 부의 집중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한국은 어떨까요. 혹시 사전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한 것으로 전해진 ‘땅콩회항’ 주인공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그런 식으로 법망을 피해갈 가능성이 있을까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이 땅에 퍼진 지는 40년이 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