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저희가 서류를 걷고요. 저희 선생님들이 서류 통과를 시키고 1차 면접을 진행하세요. 최종 면접만 A 외항사 측에서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올해 채용된 A 외항사 승무원들 보면 20명 중에 18명이 저희 학원 수강생들이예요.”
이틀 전 사전 예약을 하고 방문한 서울 강남구의 B 승무원 학원. 녹차 한 잔을 건네준 학원 관계자와 상담을 한 지 5분이 지나자 기자가 들어야 했던 대답이었다. 외항사 채용 면접을 학원이 대신 맡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B 학원에 등록해야 외항사 채용 과정에서 유리하다는 의미로 들렸다. 상담 5분 만에 기자는 16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부담스러워도 외항사 승무원이 되려면 학원에 수강 등록을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고민하는 기자의 표정을 눈치챈 상담사가 선수를 쳤다. 그는 B 학원이 얼마나 많은 외항사의 채용 대행을 맡았는 지 설명하기 위해 A4용지 3장의 문서를 건네줬다. 11군데 외항사의 채용 대행을 맡고 있다는 내용이 가장 뚜렷하게 눈에 띄었다. 이 가운데 3군데의 외항사와는 독점 채용을 진행한다고 적혀 있었다. 단순 대행이 아닌 특채를 진행하는 외항사는 무려 5곳에 달했다.
“대행은 저희 학원에서 서류 심사와 1차 면접으로 (응시자들을) 거르고 최종 면접에서 해당 외항사 직원이 심사하는 거라면, 특채는 채용 과정에서 저희가 가산점을 부여하는 거예요”
‘대행’과 ‘특채’의 차이가 뭔지 묻고 싶었던 기자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속 시원한 대답이었다. 쉽게 말하면, 해당 학원이 대행이나 특채를 요청한 항공사의 승무원 요건에 맞는 교육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돈으로 벼슬을 사는 ‘매관매직’과 크게 다를 바 없다. 160만원의 수강비를 납부하고 외항사 채용 과정에서 혜택을 누릴지 학원에 등록하지 않고 저 혼자 힘으로 지원할지 결정하는 건 오로지 상담을 받는 자의 몫이지만, 기자도 학원에 수강 등록을 해야만 외항사 승무원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늘의 꽃’이라 불리는 승무원은 회사 이미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화려한 겉모습으로 선망의 직종으로 꼽힌다. 특히 한국에 취항하는 항공사가 50개를 넘어서면서 외국 항공사는 해외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직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됐다. 업계에선 내년도 외항사 승무원 채용 규모가 2500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국내 지사가 없는 외항사 취업시장의 경우 상당수가 채용을 국내 사설 승무원 학원이 대행토록 하고 있다. 외항사 채용 과정에서 특정 학원 수강생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혜택이 억울하다면 150만~200만원 상당의 수강비를 내고 채용 대행을 맡은 학원에 다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 4월 싱가포르 항공사는 B 학원에 채용 대행을 맡겼다. 이렇다 보니 최근 외항사 취업시장에서 B 학원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외항사 면접 시험에서 이 학원 출신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때문에, 취업시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싶으면 ‘채용 대행 서비스를 하는 학원의 수업을 수강해야 한다’는 법칙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있는 C 승무원 학원에서도 150만원 상당의 수강비에 30만원을 얹어 특별반으로 들어가면 “특정 전형까지 면제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C 학원의 명성만 믿고 지난 2012년 7월 수강 등록한 박모 씨(27)는 “승무원이 되고자 지난 3년 동안 700만원 상당의 수강비를 냈지만 시간과 돈만 허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담에서 “편안한 인상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는 지난 21차례나 승무원 면접을 봤지만 매번 불합격이었다.
한편 외항사 취업시장에선 이 같은 사실상의 매관매직이 횡횡하지만 이를 잡아줄 법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사설학원의 채용 대행 서비스가 위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외항사가 ‘해당 학원을 믿는다’며 혜택을 준 것이기 때문에 학원의 평판은 좋지 않을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취업할 수 있다”며 수강비를 요구하는 현행 승무원 채용 방식이 성행하다 보면 능력 있는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고 돈 있고 부패한 자들만 남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된다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