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멜버른여행⑤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남극에서 몰려온 파도와 마주하는 호주 빅토리아주의 그레이트 오션로드 600리 길은 세상에서 가장 큰 ‘전몰 추모 기념물’이자,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지구촌 최고의 해안여행 코스이다. 토키~워남불 코스 길이는 인천~속초 혹은, 부산~강진 쯤 되겠다.

신비스런 12사도 바위와 런던 브릿지, 종점인 워남불에서 남극 가는 혹등고래를 볼 수 있는 호주 최남단이다. W형 빅토리아주 해안선 중 서쪽 V자가 그레이트 오션로드이고, 동쪽 V자에는 땅끝 마을(South point)이 있다. 그 한복판에 멜버른이 벨라인-모닝턴 두 반도를 양 팔처럼 벌려 필립만을 만든다.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그레이트 오션로드가 참전용사들이 삽과 곡괭이 만으로 건설됐음을 보여주는 메모리얼아치 앞 조각상

그레이트 오션로드, 참전용사 '자원 근로' 산물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세계 유래 없는 ‘자발적 뉴딜’의 결과물이다. 전범들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아주기 위해 연합군에 가담했다가 많은 전우들을 잃고 귀환한 호주 국적의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은 1919년 시작된 이 역사(役事)의 주역이다. 처음엔 전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용사들의 일감을 주려고 공공기부를 기반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참전 용사 대다수가 전우들을 생각하며 자원 근로에 나섰다.

해식절벽 위 험준한 곳이 많은데다 장비가 변변찮아 모두 삽과 곡괭이로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개척했다. 진척도는 한달에 고작 3㎞. 토키에서 론까지 뚫는 일은 3년이 걸렸고, 론에서 아폴로까지 가는데 다시 10년이 걸렸다. 아폴로부터 12사도 바위까지는 닦기 편한 내륙길이었고 기존에 다니던 길이 있었기에 다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아, 600리 길을 뚫는데 총 13년이 걸렸다.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메모리얼 아치

코로나 때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했던 호주는 사람이 오지 않는 동안, ‘어제의 용사들’의 지휘 속에, 해안절벽 낙석 방지공사를 물 샐틈 없이 마무리 했다.

남극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속삭이는 '이곳'

지구촌 여행 마니아들의 버킷리스트에도 올라있는 이곳은 때론 해수면과 비슷한 높이로, 때론 해식애 꼭대기 길로, 어느 때엔 펠리칸 부리 같은 곶을 휘감아 돌아 남극의 소식을 바람결에 실어 전하는 바다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가는 길이다.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토키 부터 론까지는 서핑구역이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으뜸은 12사도-런던브릿지 구간 국립공원 지대이지만, 론과 아폴로 베이 사이, 해식애 윗도로 풍경 역시 멋지다.

새벽 멜버른을 떠난 차량은 그레이트 오션로드 출발점인 토키 서쪽 어촌을 지나 휴양마을 앵글시(Anglesea)에 도착한다. 여유롭게 달려도 1시간30분 걸린다.

하구가 좁아 라군이 될 뻔한 앵글시 강이 흐르고, 하구 근처엔 마을 청소년들이 비치발리볼을 즐기고 있었으며, 다리가 조금 불편한 노인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산책을 하는 곳이었다. 편의점 겸 카페인 제네럴 스토아에는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앵글시 마을

마을의 허브 역할을 하는 이 가게 한켠엔 1929년 발드리 부부가 가게를 열었고, 1937년 마리온 아주머니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경영하기 시작했다면서 가게의 역사와 마리온 여사의 사진 등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모은다. 위인만 일대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같았으면 필부필부의 살아온 얘기를 걸 자리에, 상품 매대 몇 개 더 놓았을지도 모른다. 동네화가의 동네그림도 걸려있다.

이곳은 서핑, 캥거루가 나타나는 골프장으로 유명하다. 성수기였던 1월 여름을 막 지난 때라 마을은 강변데크에서 물멍하는 사람과 하이커 외에는 한적한 모습이다. 마을거리-잔디밭-강변산책길-강-백사장 순으로 짜임새 있게 생활터전을 만들었다. 귀촌하기 딱 좋은 마을이랄까.

페어헤븐·메모리얼 아치·코알라 등 볼꺼리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페어해븐 등대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아폴로 마을엔 맛집이 많다.

남극을 왼쪽에서 둔 채 이곳에서 더 가면 등대가 멋진 페어해븐, 오션로드 개척 상징물 메모리얼 아치, 서핑-예술의 소도시 론을 잇따라 만나는데, 질롱부터 론까지 서핑해안 구역(Surf Coast Shire)에 속한다.

메모리얼 아치에 이르면, 멜버른서부터 2시간동안 해안 드라이브스루&드롭 여행을 했던 여행자들에겐 “단순한 해안 절경지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화려하고 둥근 아치가 아닌, 사각기둥 폴대 위에 공사용 통나무들을 얹어놓고, 그 아래 차량이 지나도록 만들었다.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당시 참전용사들의 작업모습

도로변 소공원엔 작업하는 동료에게 물을 건네주는 전우의 조각상이 만들어져 있고, 작업 과정들이 흑백 사진으로 게시돼 있다. 지나는 차를 세우고 운전자와 대화하는 모습의 옛 사진도 있는데, 통행료는 완공된 후 4년 만 받고 오션로드를 빅토리아주에 무료 헌정했다. 국민 기부, 참전 용사들의 자발적 참여 등으로 이뤄졌기에 수익엔 생각이 없었고, 모두가 조기에 통행료 징수용 차단막을 없애자는데 합의했던 것이다.

얕으막한 구릉지 아래로 남극에서 부터 달려온 파도가 세차게 몰아친다. 언덕에는 고가의 별장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영화배우 멜깁슨 것도 있다. 그는 호주 유학생이었는데, 이곳을 여행한뒤 반드시 이곳에서 살겠다고 다짐하고, 스타로서 성공한 뒤 집을 지은 것이다.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케넷리버에 사는 붉은새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케넷리버에서 정체를 드러낸 할아버지 폭주족(교통위반은 전혀 없었다)

서핑스쿨이 있는 레저도시 론을 지나 케넷리버(Kennett River)에 이르면 잠시 내륙생태탐방을 한다. 이곳 코알라 서식지는 여행객들의 휴게소 역할을 한다. 멋진 오토바이 삼총사가 도착하길래 누구일까 봤더니, 헬멧과 고글을 벗자 모두 60~70대들이어서 놀랐다. 그들의 역동적인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코알라는 무성한 나뭇잎 사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데, 숨은 그림찾기 하듯, 작은 소리, 큰 동작으로 저마다 “심봤다”는 표정으로 발견 사실을 알린다.

먹이인 유칼립투스 잎에 함유된 알콜 성분 때문에 다소 취한 듯 하루 20시간을 잔다는 설이 있는데, 총명한 눈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숲멍 때리는 듯한 표정이 정겹기도 하다. 유칼립투스 잎을 먹은 엄마는 자기 분뇨를 새끼에게 먹이는데, 이유는 아기 체내에서 살균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케넷리버의 코알라

가장 멋진 포즈의 코알라를 카메라 줌인으로 포착하는 내기가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니가 이겼어”라는 말도 들린다. 그레이트 오션로드 여행길에 벌인 코알라와의 한판 밀당도 여행의 감초가 되었다. 케넷리버에는 반딧불이를 관찰하는 그레이(Gray)개천 보호구역도 있다고 한다.

서핑의 메카 '아폴로베이'·열대우림 ‘그레이트 오트웨이’

이곳에서 5㎞만 더 가면 케이프 패튼(Cape Patton) 전망대에 선다. 빠삐용 절벽 혹은 연평도 가래칠기 해변 같은 풍경을 조망하며 12사도 영접의 꿈을 키우는 곳이다.

멜깁슨이 반한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함영훈의 멋·맛·쉼]
케이프패튼 전망대

빅토리아주 남해 V자 변곡점이 오트웨이 국립공원 거의 다 간 지점에 있는 아폴로베이는 서핑의 메카이다. 날씨가 고르지 않은 때에도 많은 서핑객들이 저마다의 솜씨를 뽐낸다. 이곳은 서핑 맛집일 뿐 만 아니라 진짜 맛집들이 많이 늘어선 어촌이다.

12사도를 50여㎞ 앞둔 지점부터는 열대 우림이 있는 그레이트 오트웨이 국립공원의 중심을 통과한다. 마지막 걸작을 보여주기 위해 잠시 초록색으로 안구를 워밍업한다. 50분쯤 뒤 마침내, 공중화장실조차 예술적으로 지어놓은 12사도 공원 주차장에 도착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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